이 글은 일과건강 2008년 11월호 [현장에서] 원고 입니다. 이 글의 필자는 금속노조 동우화인켐 비정규직분회 최현기 님이며 저작권은 일과건강에 있습니다. 글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와 필자 이름을 명기하세요.
동우화인켐은 삼성전자 LCD 편집광 필름을 제조, 납품하는 삼성전자의 최대 규모 협력업체로 경기도 평택시 포승공단에 있는 회사입니다. 정규직 1,000여명, 비정규직 1,000여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2007년 한해 순이익만 890억 정도 되는 재계순위 200위 내의 대기업입니다. 평택 쌍용자동차와 맞먹는 매출액을 낼 정도의 엄청난 기업입니다.
건강을 담보로 일자리 흥정하는 대기업
그러나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법적인 보호는 그간 전혀 없었습니다.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일해야만 하는 곳이 바로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 삼성전자의 최대하청업체 동우화인켐의 현실이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대부분이 근무하는 크린룸에서는 평균 2달에 1번꼴로 가스누출 사고가 빈발했으나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제 제기도 못했고 회사도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2006년에는 원인불명의 가스폭발사고가 발생하여 1km나 떨어진 타 사업장으로 파편이 튀기도 했습니다. 2007년에는 원청사인 동우화인켐에서 원인불명의 가스사고로 작업을 중단했고 노동자들이 두통과 울렁거림 등의 증세를 호소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회의 기록도 있습니다. 2008년 5월 노조가 결성된 후에도 3차례나 되는 가스누출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노조를 결성하자마자 제일 먼저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하였고, 그 결과 응답자 150여 명 중 97%가 근무 중 가스누출 경험이 있었다, 96.5%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가스성분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98.6%가 가스의 독성과 건강상 문제, 주의사항에 대해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대기업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 아래 노동자들의 건강을 담보로 일자리를 흥정하던 곳이 바로 삼성전자 최대하청업체 동우화인켐의 현실이었습니다.
노조간부 해고에 항의집회를 연 조합원들. 삼성전자 최대 하청업체 동우화인켐에도 무노조 경영은 적용되었다. ⓒ 동우화인켐분회
하청업체에도 ‘무노조 삼성’ 악명 떨쳐
가스누출뿐만이 아니라 화장실 가는 것까지 허락을 받고 ‘출입증’을 달고 나가야했던 비인간적인 대우와 100% 강제잔업, 강제특근 강요, 악질관리자의 월 10~20만원 상당의 뇌물상납요구, 일방적인 상여금 삭감 등 그동안 차마 말 못하고 꾹꾹 참아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5월 26일 11명의 노동자가 모여 설립총회를 진행하고 5월 27일 구내식당에서 노동조합 설립 보고대회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무노조 삼성’의 악명은 하청업체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헌법을 위반하는 삼성의 ‘무노조’ 때문에 노조를 결성하자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이 일거리를 끊을 것이다. 우리 일자리라 없어진다”며 관리자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현장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럼에도, 회사 측의 온갖 방해와 탄압에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입이 봇물처럼 쇄도하였습니다. 전체 1,0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서 결성 5개월 만에 400여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신분에서 조합원으로 가입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해고사유가 될 수 현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6월에 노동부에 진정을 넣는 것부터 시작하여 빈번한 작업장 내 가스누출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했습니다.
사고 터졌는데 ‘앉아서 일하라’
지난 6월 12일, 28일에도 연이어 가스누출 사고가 터졌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가스누출사고 때 관리자들은 앞이 잘 안보일 정도로 뿌연 가스가 보이는데도, 매캐한 냄새 때문에 골머리가 흔들리고 구토가 나오는데도 대피하란 말 한마디 없이 오히려 문을 막으며 제자리에 앉아서 일을 하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노조를 만든 이유의 첫 번째가 우리의 소중한 생명과 건강때문이기에 작업을 중지하고 조합원들과 비조합원들을 대피시켰습니다. 400여명의 노동자들이 관리자들의 욕설과 호통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동우화인켐 설립 이후 처음으로 스스로의 생명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일을 멈추고 현장 밖으로 나왔습니다. 노조는 현장 설문조사, 노동부 진정과 고소 등의 대응으로 회사 측에 재발방지를 요청했습니다.
그럼에도 회사는 가스누출에 무대응으로 일관, 노동조합에서는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7월 8일과 9일, 4시간 작업거부를 하며 대책마련을 촉구했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현장을 누비며 가스사고 원인규명과 재발방지, 악질관리자의 퇴출을 요구하며 어색하지만 팔뚝질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유독가스 없는 곳에서 정상적으로 일하겠다는 우리들의 너무나도 정당한 요구에 회사는 결국 해고통보로 답했습니다. “작업거부로 인한 업무방해!”를 주요한 해고사유로 들어 회사는 노동조합 간부를 모두 해고하고 2억 원의 가압류를 걸었습니다.
노동자 출입을 관리하는 확인증. 동우화인켐의 노조탄압은 삼성을 닮았다. ⓒ 동우화인켐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