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노동조합 정책기획부장 손승권
올해 1월 2일, 새해 벽두부터 서울메트로 김상돈 사장은 지하철노동자들에게 협박문을 보냈다. 말은 신년사라 하였지만, 새해부터 구조조정을 할 것이고, 노동자의 머릿속까지 공사가 지배하겠다는 창의혁신프로그램을 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 김상돈 사장의 선전포고, “2010년까지 2088명 감원”
74년 개통 이래, 300억 명 수송이라는 기염 속에서도 김상돈 사장, 그가 인정하듯이 ‘대가 없이’ 지하철을 이끌어 온 1만 노동자들은 이제 채 일 년도 안 된 사장에게서 “혹여 라도 당연히 가야할 길에 동참하지 아니하고 딴지를 거는 등의 반 혁신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결단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협박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한 번 더 “결국 조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점 또한 분명하게” 들어야 했다.
이미 도시철도가 작년부터 ‘창의조직 만들기’라는 프로그램으로 조직개편이 되고, 노사 간의 깊은 갈등이 쌓이고, 현장조합원들이 불안한 일터를 걱정하던 터였다. 1월 24일 노동조합의 창의경영 분쇄투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자회견을 한 김상돈 사장이 2010년까지 2,088명을 자르겠다고 하니 현장의 분노와 허탈감은 극에 달했다.
2월, 노동조합은 선거체제에 조기 돌입하였다. 다만, 선거가 끝나도 전임 집행부 임기는 한 달이나 남은 상태였다. 선거에 진 전임 집행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임기를 채우지 않고 내려갔고, 새로운 집행부는 임기개시 일주일 만에 인원감축을 포함한 조직개편안을 공사가 기습 이사회 처리하는 수모를 당했다.
# 업무 조직 근본까지 변화시킨 10년간 4번의 구조조정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은 99년 말 정원이 1621명이나 줄어드는 구조조정을 당했다. 아니, 절반의 선택으로 구조조정을 수용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게다. 당시 배일도 전 위원장은 동종업종과의 임금격차 해소와 감원을 맞바꾸었고, 현장은 역무 4조3교대에서 3조2교대로, 전 분야 월 휴무 하루 축소와 인원감원으로 나타났다. 또 다시 03년에는 행자부 지적사항 98명을 감원 합의하였으나 연장운행 관련 355명 증원에 가려졌고, 주5일제 관련 증원을 229명으로 궤도 분야 중 최악으로 합의하면서도, 청경 축소 등으로 최종 증원은 156명에 그쳤다.
마지막으로 올 3월, 이제까지 노사합의로 했던 감(증)원과 달리 공사는 겁 없이 일방적인 감원을 684명을 진행하였다. 사실상 퇴출제인 서비스지원단을 포함한 순증원이 280명이라며 실 감원은 404명이라고 주장하지만, 새로운 업무에 대한 인원 산정 즉, 노동강도 증가 고민이 전혀 없는 주장일 뿐이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4번에 걸친 구조조정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근무형태 변화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업무조직 변화까지 당하는 지하철 노동자들은 지금 피곤하다. 야간노동과 지하환경, 갈수록 높아지는 평균연령의 피곤함에 언제 ‘서비스지원단’으로 불려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30년을 넘게 헌신한 직장에 대한 배신감은 술자리의 안주거리를 넘어 구체적인 스트레스로 조합원들을 옥죄고 있다.
크고 작은 안전사고 부를 점검주기 연장․분소 통폐합
서울메트로의 창의혁신 구조조정은 한 마디로 ‘더 열심히 졸라매고, 더 싸게 부려먹는’ 경영이다. 지하철 역사에 신발 끈을 다시 매는 회사 포스터를 볼 때마다 어느 덧 신발 끈이 스르르 풀려서 발목이 아니라, 내 목을 조르는 불온한 상상을 해본다. 서울메트로가 제시하는 감원의 방식은 인원-업무의 동시 아웃소싱이다. 그것이 자회사 방식이든, 개인 출자 방식이든 아웃소싱을 통해서 1200여 명을 감원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로 점검주기 연장, 점검인원 축소로 업무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서울메트로 사측은 본사 조직의 증원, 1~3급 증원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향후 창의혁신리더 교육과 성과주의 인사관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지하철 현장을 본사와 관리조직만 남기는 외주화의 전당, 비정규직 천지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공사는 1차 조직개편의 목적을 “고객, 효율, 안전 중심의 조직개편”라고 밝혔다. 그러나 고객 만족과 안전을 위한 현업 인력을 대폭 줄이고, 하위직만 감원하면서 공사 스스로 거짓말임을 증명하고 있다. 실제 역무 현장에서 각종 창의활동이 강요되고, 매표 및 안전 활동 외 부가적인 업무가 가중되고, 고용 불안감이 증대되는 가운데 안정적이고 마음을 담은 고객응대는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또한 분소 통폐합, 인원축소로 기술 현장은 즉각적인 시설 보수를 할 수 없게 되는 등 고객과 안전은 오히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렸다.
구조조정을 경과하는 동안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각종 스트레스와 신경증을 앓게 된다. 최근 현장 조합원들을 만나면, 회사에만 오면 짜증이 난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결국 창의도, 고객만족도, 안전도 다 노동자들의 건강한 삶에서 나와야 하는데 서울메트로의 창의와 고객, 안전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구조조정과 조직개편으로 가장 극심한 피해를 본 것은 기술분야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기존 분소가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담당해야 할 점검 구간은 배로 늘었으나, 점검 인원은 그리 늘지 않았다. 오히려 분소의 축소로 점검 구간 내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훨씬 강화된 노동강도에 노출되었다. 특히 전기, 신호, 전자, 철도토목 등으로 구분되던 직렬이 통합되면서 업무를 알지도 못하는 관리자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이중고, 삼중고에 처해 있다.
차량 노동자들은 일방적인 점검주기 연장으로 인원을 축소 당했으며, 정기검사 지연은 임시 검사, 특별 검사 증가로 이어져서 노동강도가 강화될 것이다. 역무와 승무 노동자들 역시 서비스지원단 등의 인원전출로 휴무도 못 쉬고, 대체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아웃소싱이 생존권의 문제라면, 일상의 감원은 이미 건강권 문제로 악화되고 있다.
25억 절약 위해 출퇴근 환기․냉방시설 가동 중단
공사의 구조조정은 인원, 즉 인건비 절감에 목적이 있다. 즉, 공기업 경영효율로 포장돼 각종 상업주의 전략이 관철되는 것이다. 공사는 돈-예산을 절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태세이다. 자본이 가지는 무자비함과 폭력적인 양식은 공공부문이라고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전력피크제이다. 25억 원을 절약하겠다고, 여름철 출퇴근 러쉬 시간대에 환기시설, 냉방시설을 가동 중단하겠다는 발상이 상업주의적 발상이다. 이 사업의 추진 실무자들은 사업 성공 시 성과급 및 인사반영까지 요구하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보상에 대한 자발적 복종은 노동자로 하여금 효율의 미명 아래 구조조정의 방안을 적극적으로 내게 한다.
또한 공사가 시행하려는 점검주기 연장은 대형 안전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다. 실제 신형 전동차라고 하더라도, 기존의 2년 주기 중정비를 기준한 전동차가 상당수 있음에도 공사는 일괄적인 3년 점검으로 연장하였다. 전동차 고장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이러한 전동차 점검 문제는 기술분야의 시설 점검과 연동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앞에 밝혔듯이 기술분야는 분소는 줄이고, 점검구간은 늘리는 방식으로 업무에 지쳐 노동자들이 외주용역을 동의하게 만들려는 의도마저 읽힐 정도로 비상식적 조직개편을 하였다.
매표 업무의 무인화 및 아웃소싱은 기계와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 외에 장노년층, 장애우, 타지인 등의 대중교통 접근성을 막게 된다. 공사는 이제까지 진행해왔던 것처럼 매표창구 하나 줄이면 인원을 안전요원으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인원을 감원할 것이고, 역사는 기계음과 단속만이 판치는 슬럼이 될 것이다.
자본의 공격, 저렴한 공공서비스 요금으로 이어질 것
일부 시민들은 공기업의 비효율(?)을 말하면서, 세금을 이야기한다. 공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공격하기도 한다. 또한 공기업 노동자들은 임금투쟁하기를 주저한다. 서울지하철도 그러하다.
그러나 공기업 노동자들을 향한 자본의 공격이 끝나면, 공공서비스의 저렴한 요금으로 공격이 이어질 것이다. 아니 이제는 동시 진행형이다.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이 야간 노동을 통해 버는 임금 수준이 노동자 평균을 상회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서울지하철의 그동안의 활동은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비정규직 문제, 노동악법 문제에 일부의 참여 이상을 조직하지 못해왔다. 그리하여 개악된 비정규 악법으로 분사화니, 아웃소싱이니 고통 받는 것이다. 시민의 이해와 노동자 가족의 이해가 달리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사회공공성 문제를 노동자 마음으로, 시민의 언어로 말하지 못해왔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넘는 노동자-민중, 공동의 전략적 목표를 세워내지 못해왔다.
이제, 또 다시 험난한 구조조정 저지 투쟁이 시작됐다.
구조조정 문제를 생존권을 지키는 각오로, 비인간화, 상업주의 전략을 분쇄하는 사회공공성 대안으로 투쟁하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