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노동자의 아들 딸 이었다

by 일과건강 posted Mar 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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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인천지부 콜트악기지회 조합원 방종운




자연을 진한 초록색으로 물들이기 위해 비가 오나 보다. 비오는 날에도 정문에서 비옷을 입고 아침 선전전을 하는 정리해고투쟁위원회(이하 정투위)와 타 지회 간부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본다. 고맙다. 구조조정이라는 아픔을 당한 영창악기, 큰 공장으로 콜트를 비롯해 주변 작은 공장의 굳은 일도 마다 않고 열심히 해주는 두산인프라코어, 늦깎이로 들어 왔지만 타 지회 못지않게 열심히 하는 대원강업, 근래에는 드물게 오지만 용역깡패에 현장을 빼앗겼다 다시 찾은 동광기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가 심술을 부릴 때도 변함없이 와서 해주는 지역동지들에게 모두가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한편으로 노동조합 역사 21년이 돼가도록 이 모양 이 꼴을 보면 내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한숨이 절로 난다.


# 그 많던 탄압도 동지애로 이야기 되네

 

5월 9일 대천충북지부 확대간부 파업 투쟁사업장 3사(ASA․코스모링크․콜텍)의 본사 타격 투쟁 결의대회가 있었다. 그리고 배치전환에 따른 사측이 제기한 행정소송 4명 해고자 판결문이 오늘 나왔다. 부당 해고를 인정한다는 승소 문구였다. 4월 3일 중노위 정리해고 패소와 배치전환에 따른 4명의 승소는 법적으로 충동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정리해고에 따른 중노위 결정은 잘못된 것이다. 행정소송의 승리와 간부파업, 야유회, 수련회에 탄력성을 붙여 나간다. 

15~16일 콜텍 수련회에서는 초심을 잃지 않고 약속을 꼭 지키고 상처가 나면 치유하고 마음의 상처는 조합원들끼리 어루만져 주어 손상된 마음을 다잡아 주는 콜텍 조합원들이 되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조합원이 가족에게 쓴 편지를 공개했다. 가슴이 뭉클하고 모든 조합원들 마음과 똑같아 진정한 삶의 목표를 정하고 승리할 수 있는 확신을 주었다. 편지내용은 이랬다.


“지금까지 1년이라는 날이 지날 때까지 참고 인내하고 믿어줘서 고맙다. 정상에 오르도록 도와줘서 고맙다. 당신이 나를 믿고 참아 주었기에 더욱 힘내서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실망시키지 않는 남편과 아버지가 될 것이고 더욱 힘내서 꼭 승리하는 모습 보여 주겠다.”


편지를 읽어가는 목소리가 떨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고였다. 조합원의 진실한 모습에 우리 모두 숙연해지고 손에 손을 잡고 승리를 기원했다. 정말 뜻 깊은 수련회였다. 콜텍 조합원들의 투쟁과정 속에 있었던 많은 탄압과 일도 이렇게 동지애로 이야기될 때 기억하고 싶은 일들로 채워진다. 그 힘이 이어진 것인가 서울콜텍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하다.


총력투쟁을 위해 방배동 사장 집으로 향했다. 방배동은 탤런트나 가수들이 많이 사는 부자 밀집지역이다. 사장 집은 어마어마하고 감히 누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보안이 잘되어 있었다. 앞장선 조합원들이 사장 집을 확인 후 벨을 눌렀다. 목소리를 높여가며 수차례 대화하자고 했건만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회사로 가라”는 말 뿐이었다. 우리의 방문(?)에 놀란 박영호는 콜텍 조합원을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관과 정보과 형사들이 들이 닥쳤다. 콜텍은 목숨을 건 투쟁 기필코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며 의지를 밝혔다. 어찌 저런 힘이 어디서 나올까! 콜텍의 가열찬 투쟁을 보면서 내용상으로는 이겼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도 그렇게 한다면, 나 역시도 모든 굴레와 억압에서 해방된다고 생각을 해본다. 

엄연하게 존재하는 정리해고와 6월 13일 붙여진 제2의 희망퇴직. 회사는 6월 16일 콜트행정소송에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수작을 부리고 5기 집행부가 동요한다. 가만히 있어야 하는 내 자신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이런 상황 속에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5. 18 광주 민주항쟁 28주년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17일, 광주로 내려간다.


# 공수부대 하사관 생활, 부끄러움을 이기고


민주화의 성지 광주는 영원히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 같았다. 망월동에 도착하여 구 묘역으로 갔다. 비만 오면 흙탕길이던 구 묘역도 도로 정비가 되어 전과 많이 달랐다. 해외에서 온 사람, 노동자, 학생 많은 사람 참배객들이 방문하였다.

묘지 하나하나가 뜻을 가졌지만 묘지하나 하나 이동하면 설명을 해가다. 임신을 한 신혼의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죽음을 당했다는 사진 속 그 앳된 얼굴을 보니 그 잔학상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80년 공수부대 하사관으로 부마에 참여했지만 광주의 잔혹상을 보며 내 자신이 부끄럽다. 가면을 쓴 것이 아닌가. 가면을 쓴 것처럼 행동해 오지 않았는가. 언제는 감추고 다녔던 나의 군대생활. 이것도 다시는 오지 말아야 할 역사이기에 나는 진실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인지 민주화의 빚을 진 사람으로 26년이란 세월을 한 치도 변함없이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타인에게 내 모습은 독선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구 묘역을 지나 신 묘역으로 나와 보니 묘역이 크고 깨끗했지만 왠지 의미는 덜 한 것 같다. 양복을 입은 정치인들의 한 무리가 지나가고 18일 행사를 치를 무대설치 준비를 보며 이명박도 올까하는 물음이 던져졌다. “재수없어~” 하는 전 여성부장인 이현례 누이 말을 들으면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는 언제나 오려나하는 마음으로 부평으로 다시 돌아 왔다.


# 자본과 권력은 진실을 두려워한다


광주를 갔다 왔어도 마음은 항상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는 듯 했다. 5월 22일, 70년 동일방직 선배인 총각 누이에게 전화가 왔다. 천주교 열사 추모 미사가 명동성당에 있으니 에 같이 가자고 한다. 항상 힘이 들 때를 알고 있듯이 전화를 주시는 총가누이가 고맙고 반가웠다.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분이다. 송내역에 만나서 명동성당에 갔다. 명동성당에서 의를 위해서 죽어간 수많은 얼굴을 보았다. 사진 속 모습은 멈추어진 모습들, 늙어가는 우리 모습이 대조적이다. 

그때만큼 열성적으로, 모든 것이 해방을 위한 저항이라고 살아왔던 세월들이 그립다. 김남주 열사를 비롯하여 사노맹 사건으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신건수(세레명 분도). 그 사진 안에 얼굴들은 계급모순, 민족모순을 가지고 서로 다르게 투쟁하였지만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가지고 하늘로 갔을 것이다. 미사가 끝난 후 촛불집회에 참여하러 광화문으로 걸어가면서 많은 말을 주고받았다. 총각 누이가 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는 운동을 순수성과 진실성을 가지고 해왔고, 그렇게 가야한다.”


혹시 나는 진실성과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산 것이 아닌가? 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래를 가슴속으로 읊조려 본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처럼, 광화문에 도착하여 일렁이는 촛불에 비쳐지는 얼굴들이 희망으로 보인다. “쥐박이가 잘한 것은 우리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쳐 준 것”이란 선전물을 들고 나온 10대들, 재치 있고 참신한 표현들이 신선하고 깨끗하다. 순수성과 진실성이 있기에 촛불을 만들어 냈고 촛불이 들불이 되어 퍼져간다. 비정규직 투쟁을 목이 아프게 외쳐댔지만 무관심 속에 법이 통과되었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이 아픔 뒤에 오는 진실이라면 미친 소 투쟁은  10대들의 반란이다. 그들의 순수성과 진실성이 이루어낸 것이다. 이 땅에 희망의 촛불을 붙인 것이다.

자신들의 일을 자신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 무서움과 두려움도 없이 촛불로 일구어낸 아름다움이다. 이 땅에 핍박받고 사는 우리들의 저항을 의미인 것이다. 이렇게 흘러나온 것들이 광주에서 서울로 이 땅을 촛불의 바다로 일구어 낸 것이다. 그래 너희들이 있었지 노동자의 아들딸이다. 잠시나마 혼란스럽던 마음이 정리된 것 같다.


이명박 탄핵 서명 운동이 이곳저곳에서 여러 목소리로 들려왔다. 도대체 얼마나 이명박 정권이 잘못하는지 여실히 증명하는 것 같다. 자연을 파괴한 재앙이 결국 인간에게 돌아올 대운하 계획, 상수도, 철도, 가스, 공기업 민영화, 빈부 격차를 더욱 더 나게 하고 나라의 부를 미국에게 통째로 넘겨주고 노동자들의 작은 목소리를 들을 줄 모르는 오만한 정부와 자본이다. 

이명박이나 박영호 사장은 물질적인 면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 억압과 착취에 우리는 저항하고 투쟁할 것이다. 자본과 권력은 진실을 두려와 하니까. 광주가 죽음으로 부활하였듯 세월이 흐른 뒤에도 진실을 향한 저항정신 안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순수성과 진실성에서 나오면 결국 승리하고 인간해방으로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다시 일어선다.


하양나비 날다

한의 무게 너무 커

하얀 날개 꺾인 혼 

이승 못 잊어

오월

하양배꽃 날다 떨어지듯

꽃잎 되어 짓밟히면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가겠지

무덤가 놓인 천상의 꽃이라

하얀 국화꽃 천상의 한을 위로가 될까나

슬픔 감정이 나의 눈을 흐리게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도 흘러왔다는 것


방관하면 살았던, 투쟁하면 살았던

기다리던 내일은 지금껏 찾아오지 않아

목마름의 기다림만을

사모했던가.

올곧게 사는 이의 애절하다

마음속에 잠시 머물렀던 시간인

못되어서 영원히 남을 누군가를 그리며

그 힘으로 지켜가는 세월


이 붉은 황토에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넘어 설 때의 분노

미완의 해방! 

다시 일어나 투쟁해야지

이 땅위에

피 눈물 다시 뿌려지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