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트악기 방종운, 2008년 5월호 일과건강
콜트-콜텍은 수레의 양 바퀴로 함께 가야 한다. 콜텍 중노위에서 나온 권고안은 “위장폐업으로 볼 수 없다 노사가 잘 합의해서 4월1일까지 확답을 달라. 4월3일 최종 판결 내리겠다.”였다.
이에 노・사 합의 사항을 요구하였더니 회사 측 답변은 이랬다.
“공장재가동 문제는 이미 결정된 사항이므로 간담회 내용에서 제외하고 위장폐업이 아니라는 전제조건 하에서 희망퇴직 한 근로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단체협약에서 정한 퇴직위로금, 지급 불법태업으로 인한 임금 삭감분 지급, 공장재가동 시 이사건 근로자 우선채용, 공장점거 등 불법행위의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 하면 조합원을 만날 용의 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로 고집을 해왔지만 결국에 금속노조 대전충남지부(이하 대충지부) 수석부지부장, 지회장, 법규부장이 박영호 사장을 만났다. 노동조합 생기고 두 번째 만남이었다. 박영호 대표도 콜텍 이희용 부장과 똑같은 말만 일관했다.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했는데 노동조합이 생긴 후 대립되었다. 그래서 바이어들이 떠나기에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근본적인 실수는 노동조합에서 했다. 경제는 세계화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이익이 남으면 어디서든 한다. 본인은 정신적 물질적 피해가 엄청나다. 합리적인 생각으로 더 이상 불상사가 없었으면 좋겠다.”
노동조합 때문에 내 인생 조졌다며 지금까지 부를 축척해 준 조합원에게 책임을 전가시켰다. 가족이라며 고맙다고 밤 새워 술마시자든 사람이 노동조합 생겼다고 돌변했다. 우리는 가족까지 2~3백 명이 길거리로 내 몰려 고통 받고 생활하는데.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3차례에 걸친 중노위의 권고안으로 교섭과정을 거친 결과, 4월 3일 중노위에서 박영호의 손을 들어주었다. 초상집 분위기였다. 이 분위기를 바꿔내려고 대충지부는 콜텍 위장폐업분쇄 1주년 투쟁 문화제를 열기로 하며 준비 작업으로 다시 활기를 찾았다. 콜트정리해고자투쟁위원회(이하 정투위)에서 내려왔다. 4월 8일, 콜텍투쟁문화제에 앞서 박영호가 참석하는 논산지법 양성평등 체불임금 재판이 있어 콜트정리해고투쟁위원회보다 먼저 내려가 재판에 참석했다. 박영호는 지난 2월 15일 콜트악기 중노위에서 패해 초췌해져 나간 모습이 아니었다. 중노위 승리에 힘을 받아 당당하며 기세등등하게 나가는 박영호 대표에게 “박 씨 성 띠고 벌은 돈 다 가지고 인도네시아, 중국에 나가 살아라!” 했다. 그 소리를 들은 박영호 대표는 한동안 멈칫 하다가 가버렸다. 더러운 놈들! 회사가 어렵다고? 지나가던 개도 웃겠다. 법은 지나치게 있는 자에게만 관대하다. 이런 세상은 바꿔야 한다.
중국콜텍, 서울콜텍, 남동콜텍, 대전콜텍에서 대전콜텍만 폐쇄시켰는데 위장폐업이 아니고 무엇인가? 대전공장에서 일하는 관리자들이 중국, 서울 콜텍에서 일을 하고, 4월10일자에 문을 닫고 사표를 강요하다 7월 10일자로 정리해고 통지를 보냈는데 중노위에서 위장 폐업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하는 것 참 한심스럽다. 대전공장은 박영호 입맛대로 언제든지 문을 닫고 열 수 있다.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콜텍 문화제에 참석하였다.
문화제에 지역 노동자들이 모두 자신의 일처럼 와서 하나가 되어 위로하였다. 콜텍 이인근 지회장의 “이 힘을 받아 콜텍 조합원들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상처는 받았지만 치유하면 더욱 더 단단해집니다. 조민제 지부장님이 콜텍의 투쟁에 연대하지 못함은 문제이지만 지금 시점이 더욱더 중요하며 콜텍 아니 장투 사업장 조합원과 어려움을 함께 합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닫았다. 안타까워도 콜트-콜텍이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 참석한 문화제, 그 뒤풀이에서 “고난이 닥쳐도 정말로 함께 하면 일으켜 세울 수 있다. 그 마음이 오늘 문화제에 보여 콜텍 걱정이 없어진다. 그 마음 변하지 않고 하나 되면 우리는 꼭 이길 것이다.”라는 말을 하고 부평으로 왔다.
답답한 마음속에서도 4월 15일 모란공원에서 열리는 허세욱 열사 1주년 추모식에 참석하려고 전철을 탔다. 2007년 4월 1일 3시 55분. FTA 반대 시위도중 분신한 허세욱 열사 1주년 추모식이라니, 참 시간은 열심히 잘 가고 있다.
분신이라는 그 결심을 할 때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 땅에 사는 민중들의 아픔, 외세에 시달리는 민족의 아픔과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나라를 말아먹는 지도층을 향하는 분노인 것 같았다. 모란공원은 노동자의 정신적 고향이며 우리의 성지이면서 아픔이 존재하는 곳이다. 추모식에 많은 추모객들이 왔다.
송경동 시인의 ‘늙은 전태일의 추모시’가 눈에 들어 왔다.
“최저임금 쟁취, 택시공영제 실시를 외치며 100일째 고공농성중인 인천 지엠대우 비정규직 천막에서, 노숙 1000일 내다보는 기륭전자 천막에서, 또 그렇게 싸우고 있는 코스콤에서, 콜텍에서, 콜트에서 한국합섬에서, 이젠텍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당신을 만난다. 그리고 자본과 제국에 종속된 죽은 삶을 깨치고 이제 그만 산목숨으로 돌아오라고 왜 오지 않은 다른 세상을 꿈꾸지 않느냐고 왜 연대하지 않느냐고 묻고 있다. 왜 절규하며 새롭게 태어나 나아가지 않느냐고 묻고 있다. 대답해달라고”
민주노동당 천영세 대표, 진보신당 노회찬 국회의원,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 등 여러 추모사가 “죽지 말고 단결하고 연대하여 싸우자.”는 내용이었는데 현실은 과연 그러한가 생각해본다.
4월 17일에는 콜트 정리해고자 원직복직 및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인천지역 종교인 기도회가 열렸다. 종교인도 나섰다는 것이 독특하기도 하고 의미가 있기도 하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 성공회 등의 종교인 기도회가 부평역에서 진행되는 동안 지나가던 행인들이 멈춰서 지켜보았다. 어찌하든 새로운 형식의 집회인 것 같다. 기도문 중에 성인들도 노동을 해 왔고, 노동이 신성시 되었는데 지금은 그러하지 않다는 내용이 있었다.
“생로병사 노사우비 고뇌의 삶 안에 목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그분의 눈으로 우리는 현세의 노동자들의 아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정리해고노동자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고통스런 모습을 보며 우리 종교인들은 정명, 정견에 소홀한 원인에서 온 일임을 오늘 먼저 고백합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원직복직판정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콜트악기(주)의 행동은 그 생각과 행위자체가 악입니다.
사람보다 돈이 앞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들과 해고된 노동자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전혀 관심 없고 오직 이윤만을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정리해고 하였지만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원직복직 시키라는 판정을 내려 우리 종교인들은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콜트(주)회사는 불복하고 대법원까지 간다면서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재물의 상속자가 되어 손가락질을 받게 되면 안 된다”는 법구경 말씀과는 정반대로 손가락질 받아도 재물을 취하는 악한 콜트자본의 모습을 하늘은 불쌍히 여기시어 그 악덕자본과 기업주가 회개하고 뉘우쳐서 노동자에게 더 이상 악을 행치 않도록 이끌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움입니까 아픔입니까
바람에 휘날리는 작은 꽃잎 따라
모진세파 나! 휘날려도
파괴되는 인간의 시간 따라
그리운 것
저항하는 인간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살아있기에
인간으로 살고픈 소망이
해방… 자유…
푸른 하늘에 날개 짓 하듯
인간의 그리움 입니다.
자본에 짓눌려 신음,
울고 있는 그대
해방을 외치며 죽어가는 수많은 얼굴들
자유를 지키지 못함,
해방을 지키지 못한 억울함일까
벽을 깨트리지 못하고 허수아비들의 웃음지우며
그리움 따라
해방 따라 바람에 춤추며 떨어지는
작은 꽃잎
미친 듯이 날리며 떨어져 짓밟히고 있고
공장 철조망에 장미꽃 삐죽이 피어오르는 죽은 얼굴 따라
오월이면 공장마다 심어진 장미꽃이 활짝 펴 임.단협이 끝날 때 졌는데. 지금은?
이 땅에 구조조정, 정리해고에 죽지 못하여 일하는 노동자와 공장철조망 장미꽃 삐죽이 피어오르는 얼굴이 대비된다. 콜텍, 콜텍과 함께 열심히 투쟁하고 일으켜 세워주는 대충지부 간부, 조민제 지부장님 얼굴이 교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