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가 환자와 병원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의료기관평가’

by 일과건강 posted Mar 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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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임서영 정책부장, 2008년 1월 일과건강




병원에 가면 건물 외벽에 평가 1위, A등급, 브랜드 파워 1위 등등의 현란한 현수막을 흔히 볼 수 있다. 현수막 내용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병원이 좋은 병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정체모를 여러 가지 평가들이 있다. 여러 가지 평가들 중에서, 이 글은 특히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의료기관평가제도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의료기관평가제도는 1994년 의료보장개혁위원회에서 개혁과제 일환으로 ‘의료기관서비스평가’라는 명칭으로 제기되었고, 이후 2002년 의료법 개정으로 의료기관평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의료기관평가 1주기 사업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 동안 진행되었으며, 2007년에 2주기 의료기관평가 첫해 사업이 진행되었다. 의료기관평가제도는 ①보건의료서비스 향상 도모 ②보건의료서비스 질적 수준 보장 ③의료에 대한 국민의 관심증대 및 사후관리 강화 필요성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즉, 의료기관평가는 의료의 질 향상과 환자의 알 권리 증진 측면에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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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matimes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무엇보다 의료기관평가 때문에 환자들이 겪는 피해가 있다. 

의료기관평가에 대비해서, 의료기관들은 환자를 교육시키고 그 중에서 협조가 잘되는 환자를 선정한다. 그 과정에서 정말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소외되고, 대상자로 선정된 환자들에게는 지나치게 과잉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전체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의료기관평가 때 투약 대상자로 선정된 환자는, 의료기관평가단이 올 때까지 약을 먹지 않고 기다리느라 투약 시간을 놓쳐 환자가 제시간에 약을 복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평가전후로 의사 및 병원관계자들이 의료기관평가가 요구하는 형식을 맞추기 위해, 의무기록 및 미비기록을 채우는데 시간을 소비하는 바람에 실제 환자치료와 간호는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들도 많다. 평가단에게 불만을 말할까봐, 평소에 불만이 많은 환자들을 조기 퇴원시키는 사례들도 있다. 

또한 평가를 전후해서 갑자기 과잉친절과 기본간호가 증가하자 이를 악용하는 환자들까지 발생한다. 평가 때라 모든 요구가 무조건적으로 수용된다는 것을 알고, 간호사를 마치 종 부리 듯 하는 환자도 있어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도 있다.


다음은 의료기관평가 때의 병원 모습이다. 

평가 때만 되면 평소에 북적거리던 병원 주차장이 한산해지고 병원 로비가 쾌적해진다. 왜 일까? 의료기관에서는 평가 당일 일부러 예약환자를 조절하여 환자 수는 줄이고 병원 인력은 늘린다. 그렇다보니 평소보다 환자 대 간호사 비율이 최대 3배 이상 늘어나기도 한다. 

심지어 평가에 방해가 될까봐 미숙한 신규 직원들은 휴가를 보내고 숙련된 고참 직원들로만 근무를 하게 한다. 또한 의료기관에서는 좁은 병실을 넓게 보이기 위해 평가 기간에는 병상 일부를 빼놓았다가 평가가 끝나면 다시 원위치를 시킨다.


마지막으로 의료기관평가 때 병원 인력의 파행 운영을 들 수 있다. 

의료기관평가 당일에는 평소 근무자보다 많은 인원이 출근하여 일을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평소 4명이 근무하던 병동에서 기본으로 2명이 추가되고, 이어서 3명의 중간번이 투입되었으며, 오후에 나올 근무자 4명이 일찍 출근하여 같이 근무를 한다. 

따라서 평소 4명이던 이 병동의 인력은 평가당일 최대 4+2+3+4=13명으로 평소보다 300% 이상 인력이 투입된다. 이처럼 의료기관평가 당일 최고의 점수를 받기위해서는, 환자에게 제대로 된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현행대비 300~400%의 인력이 추가로 투입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 바꾸어 말하면, 현재 환자들은 최적의 의료서비스에 비추어 1/3~1/4 밖에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게다가 의료기관평가를 둘러싸고 일부 의료기관에서 평가단에게 과잉 접대와 향응을 베풀었다는 것이 공공연히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기관평가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 의료기관평가를 준비하지만 실사 나오는 이틀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병원현장에서는 평소 있는 그대로 평가를 받던가 아니면 평소에도 의료기관평가 때처럼 병원 인력을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만큼 현행 의료기관평가가 일회적이고 허구임을 반증하고 있다.


의료기관들은 의료기관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병원의 명성과 환자 유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과잉의욕 속에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복지부는 불법, 편법에 말로만 엄포를 놓으면서 팔짱을 끼고 있는 사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병원노동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병원노동자는 기본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평가를 받으며 엄청난 스트레스와 노동강도에 시달린다. 그리고 환자들은 평소 최저서비스를 받다가 평가당일 반짝 서비스에 한순간 감동받지만 결국 하루 만에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 병원에 기만당하게 된다. 잘못된 제도로 엉터리 평가에 억지로 내몰리는 병원 경영진도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다.


환자를 기만하고 병원노동자를 잡는 잘못된 평가의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평가 기준에 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도록, 의료기관의 공공적 역할과 인력 적정성 평가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또한 평가방법도 일상적인 병원 시설과 서비스를 평가할 수 있게 병원규모에 따라 평가기간을 2~5일로 달리하고, 사전예고 없이 불시에 불규칙적으로 평가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위해서는 의료기관 평가 담당기관을 지금의 정부와 병원협회가 아닌 제3의 독립기구로 하면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노조, 시민사회단체, 환자소비자단체, 공익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의료기관평가위원회’를 구성해 평가기준과 방법 등 평가 사업 전반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의료기관평가 당일과 같은 질 높고 수준있는 의료서비스를 평소에 제공하려면 현재의 인력으로는 할 수가 없다. 의료기관에서 적정인력 확보를 유도할 수 있는 법ㆍ제도적 장치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