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동지가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by 일과건강 posted Mar 09, 20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금속노조 인천지부 콜트악기지회 조합원 방종운

정리해고, 임금인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니 내가 갈 자리는 없었다.

개 취급을 당하면서 간 곳이 현장에서 최고 지저분하고 힘들다는 기타 광내는 빠우 작업이었다. 조립된 기타의 광을 내기 위해 천 회전체에 들이댄다. 처음이라 서툴러 돌아가는 속도에 못 맞추면 천이라 해도 서로가 치면서 빡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2~3일 지나 작업요령이 생길 때 이한수 생산부장이 와서 간교하게 “힘들면 말하세요. 다른 자리로 보내주겠다.” 한다. 
어차피 내가 다른 곳에 가면 또 한 사람의 조합원이 와서 일할 자리이다. 떳떳하게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기에 “이 부장! 까불지마. 나한테 호의보이는 척하지 말고 정리해고 조합원이 지노위에 승소를 했으니 너희들이 사장에게 설득시켜 빠져나갈  명분이 있는데 원직복직이나 시켜!” 벌레 보듯 하는 나의 말에 얼굴이 빨개지면 가버렸다. 기계 가공반에서 20년을 일한 외축, 쌍축, 기타 레크를 깎았다. 2004년 3기 2차 때 2002년~2003년 2기 지회장 임기를 마치고 1차 배치전환을 할 때 반발하며 싸웠었다. 그 자리가 칠 흐른것, 기포를 잡아 손으로 1차 광택을 내는 작업인 산대귀 자리에 배치 일하고 2005~2007 4기 지회장을 끝내고 가야할 자리에서 키타 손잡이 수정을 보는 5기 현 지회장에 일해야 하는 자리에 자리가 없다면서 빠우에 배치를 시켰으나. 11월 2일, 3명이 배치전환 되어 올라와 그곳에서 일을 한다. 내가 갈 자리였지만 지회장이 힘들다고 자리를 가지고 항의할 생각도 있었지만 포기했다.

심사가 뒤틀려도 믿음과 신의를 잃어 기가 꺾인 나는 조용히 마음정리를 하는 중이다. 배치전환을 막지 못하고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닐 바에야 다른 사람이 하기 힘든 부서에서 조합원에게 몸으로 말하리라, 나는 결국 포기하지 않는다. 
문득 이중적인 나의 모습을 보며 더 고통스럽다. 정리해고 되지 않은 조합원들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며 노동자의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정리해고 된 사람들의 몫까지 노동강도가 세셔 힘든 일을 하면 결국에는 산재환자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되 죽게 되어도 관리자에게 지나친 아부를 하는  콜트 조합원을 보며 노예가 따로 없다는 생각과 배치전환을 거부하며 맞서 투쟁하던 신혜순, 김영숙 동지가 있는 콜텍이 문득 생각난다. 회사는 조합원을 한 부서에 몰아넣고 그 부서에서 하는 일들을 야금야금 인도네시아, 중국으로 기술을 이전해 빠져나가고 한 부서에 몰아 넣은 것에 인원이 많아 정리해고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인도네시아, 중국 등 6개의 공장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아니기에 어렵고, 주문이 없어서 하는 짓거리가 보다 박영호의 이익을 초 극대화 시키는 본질 속에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똑같다. 배치전환을 거부 못하는 나도 노예로 길들여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쓴 웃음을 지우며 급변한 9, 10월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몇 년 뒤에는 중국, 인도네시아로 기술을 배우러 가야할 입장이 될 것이다.” 
우스갯소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던 콜텍 우미자 부지회장이 떠오른다. 콜텍 수련회에 가서 조합원들과 토론했는데 “문제해결을 하나도 못했어도 조합원 모두는 후회하지 않는다. 설사 우리가 깨지는 한이 있어도 언제 인간답게 이런 것을 해보았겠는가? 투쟁하는 시간들이, 인간대접 받으면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 시간이었는지, 현장에서 일할 때 갖은 욕설과 동료와의 경쟁과 갈등,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살았는데 이 투쟁기간에 인간으로 산 것 같아 후회 없다.”는 말을 들으면 놀랐다. 그리고 비노조원이 얼굴에 침을 뱉었을 때도 조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소리를 콜트 정리해고자에게서 전해 들었을 때 또 한 번 충격이었고 대단한 사람으로 존경심이 생겼다.

10월 1일은 신임지회장이 운영위원을 소개시켰다. 2일, 콜텍 집회에 같이 내려가 소개를 하려는데 정리해고자 조합원이 “둘이 가라. 우리는 따로 가겠다.”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끝내 설득시키지 못하고 계룡시청에서 하는 콜텍 집회에 내려갔다. 
콜텍에서 새 집행부에 관심이 많다. 왜 같이 안내려 왔느냐는 질문에 “처음 시작하는 일이라 바빠서 못 왔다.”는 말로 둘러 댔다. 콜텍 조합원의 기대감 “어떤 사람이냐?”는 기대감 섞인 콜텍 조합원 질문에 전 지회장으로서 신임 집행부와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렇게 배신할 사람이 아니다. 실리위주라고 할까? 오히려 꼬인 관계를 나보다 잘 풀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동조합 20년 역사 속에 87년, 93년에 조합이 깨지고 88년, 91년의 정리해고, 노조 파괴범 제임스 리가 들어와 조합을 깨겠다고 할 때 맞서 투쟁한 그 세월을 거쳐 왔다. 콜트 정리해고자들이 콜트의 모든 것을 묻으며 하나가 되려고 노력했던 우리들이였지만 “둘이 내려가라. 5기 지회장과 같이 안 간다.” 한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묻었던 한을 콜텍 조합원은 모르는 것 같다. 2007년 새해부터 시작한 정리해고 투쟁 때도 4기 2년차 대의원을 하다 정리해고 발표 후 집단 사퇴하고 방관하고 모르는 척한 사람들이다. 대의원회의나 확대간부회의를 할 때마다 파업은 안 된다는 기본적인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 참 힘이 들었다. 양심이 있는 놈이라면 이 상황에서 나와야 한단 말인가. 투쟁사업장에서 선거를 한 것 자체가 잘못된 거다. 방종운, 그렇게 당하고 나서도 정신 못 차렸냐! 천막에 같이 있던 정리해고자 누이가 말한 것처럼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속에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인간이기에 왜 그런 마음이 없단 말인가!
한편으로 갑자기 낙동강 오리알 신세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부․ 지회 ․콜텍 삼각관계에서 내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지 않는가! 현재 난 지회장도 아니데, 신임지회장이 정리해고자와 콜텍과 함께 일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비켜서는 것이 옳은 길이다.

그런데 지켜보는 입장을 취하다 보니 말을 많이 듣는다.

휴가 중 본부에서 일을 하다 커피 한 잔 하자는 박세준 신임 사무장의 제의를 받고 지부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정리해고 간담회가 있으니 모양새가 어떻든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 있으니 함께 가서 간담회를 해야 되지 않겠냐!
“할 말 없다. 앞으로는 신임 지회장이 할 역할을 만들어 줘야 한다. 신임 지회장도 뜻한 바가 있어 나왔는데 내가 자꾸 개입하면 서로 관계만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내 중심으로 이끌고 왔다. 그래서 일부 간부들이 불만이 많았다. 그 간부도 자신이 할 일도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못한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그 간부들이 자신들이 할 일을 찾아 하겠다는데 계속 내 뜻대로 하자고 할 수 없다. 내 자신도 설득시켜갈 힘도 없다.

조직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닌 것 같았다.  박 사무장이 “조합원의 자격으로 할 수 있지 않느냐?”고한다. 
“그것은 비정규직을 위해 정규직이 파업을 하는 KM&I지회처럼 대화가 통하는 콜트라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다. 그 시각으로 콜트를 보면 안 된다. 20년 세월 속에 긴장의 연속이었다. 소수가 다수를 이끌고 왔다. 그 결과의 끝이 지금의 모습이다. 콜트악기 노사관계를 다시 쓰고 싶었다. 2007년 회사가 선제적으로 도발한 정리해고에 끝까지 투쟁하여 이놈들이 아주 질리게 만들고 헛짓거리 못하도록 파행적인 노사관계을 정립하려 했다. 그런데 원칙적인 활동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조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삼는다면 달게 받겠다. 나도 인간이다. 잘하니 못하니 해도 지역의 많은 은혜와 연대로 여기까지 끌고 왔다. 지부는 전위원장을 중심으로 새판을 크게 짜려 했고, 그 중심에 서지 못한 내 역할이 지금 정리됐다. 신임집행부와 잘 이끌어 나가기를 바란다. 그래야 콜트 정리해고 조합원도 신임지회장을 믿고 의지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잘 조화되도록 앞으로의 관계설정에서 빠져야 할 것이다. 또 파업만 하려한다는 전 집행부보다 현 집행부가 현장조직에서 잘 이끌어온 사람이니 지부와 지회 협조 하에 잘 이끌었으면 한다. 정리해고 투쟁 중의 선거에서 떨어진 비참함, 초라함, 죄송함, 정리해고 조합원의 걱정이 태산 같은 복합적 관계를 고려해 달라. 정리해고가 없는 다른 지회처럼 집행부가 교체된 것이 아니다.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다스리고 있다. 지부대의원으로 나가겠다. 그때하면 되지 않느냐?”

말을 마치고 어제 먹은 술이 덜 깬 것 같아 그냥 무작정 고속버스를 탔다. 말도 없이 내려온 나를 보고 콜텍 조합원이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이냐고. 
“현장 들어가기 전 내려왔다. 앞으로 오기 힘들어 왔다.”고 했다. 아 어제 먹은 술 때문이다. 그리움이 마음 가는 곳으로 오게 만들었다. 농담반 진담반 늦은 밤 콜텍 형제들과 나누는 술은 그리운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반대편 천막에 불이 늦게까지 켜져 있어 저분들도 와서 한잔하자는 내 제의에 대충지부 임원들이라는 말을 들었다.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를 대고 그곳에 가보았을 때 정말 보기 힘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너무나 뜨겁고 진지하게 토론과 학습을 하는 것이다. 불빛 사이 작은 간판에 대충지부 사무실이라고 쓰여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사업장에 지회를 만들기 위한 낮에 일하고 밤에 형광등 불 밑에서 학습을 3개월간 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우리가 사랑하며 보듬고 안고 가야할, 잊어버렸던 모습이다. 8월 20일, 조합원 직접 선거로 당선된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5기 임원의 ‘권한은 지회로 책임은 지부가!’ 공약이 약속대로 콜텍에서 사무실을 내서 일을 보는 것이다. 권력화 되가는 직책에 거부반응이 있었는데 조민제 지부장, 권영민 수석부지부장, 이화운 사무국장 동지 등 지도부의 헌신적인 모습이 신선하고, 깨끗하게 와 닿았다.

12일, 콜텍과 많은 정을 나누며 관심을 많이 가져 주었지만 헤어질 시간이 된 것 같아 오후에 올라가려 했는데 오후에 한라공조 비정규직과, 정규직 지회장이 함께 삼겹살을 가지고 왔다. 금속노조 5기 지부임원 선출은 이후 우리 지역에 산별노조 운동을 강화하고 산별노조 시대의 전망과 과제를 열어나가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았으며 현장에 권한을 부여한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다. 한라공조 간부들은 조합원들에게 앞으로 대의원들에게 만원을 거두어 장기투쟁 사업장을 지원할 계획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사람이 아름답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어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나의 마음이 봉합되는 것 같다.
이런 동지들이 있어 희망을 보는 것 같았다. 12일 오후에 올라가려던 걸음이 13일까지 이어졌다. 이인근 지회장이 “어제 학습한 동지들과 보고대회를 보고 올라가라.”는 말에 또 하나의 새로운 지회가 생긴다는 생각에 내친김에 보고 올라가기로 정리했다.
13일, 인삼 고장인 금산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전충북지부 ASA지회가 설립되었다. 오전 7시. 정문에서 노동가가 울려 퍼지고 사업장 주변에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힘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9시에 휴게실에서 보고대회를 했고 야간조는 가입원서를 다 쓰고 아침조에게 가입원서를 받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얼마나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는지 100% 조합원 가입으로 알 수 있었다. 3년간 임금동결, 이유 없는 상여금 400% 삭감, 주야 교대, 임금체불로 생계가 막막해진 ASA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선택했다. ASA는 1992년에 한국타이어에서 만들었다. 1997년에 법인이 분리되었지만 한국타이어가 100% 지분을 갖고 있어 ASA를 쥐락펴락 한다. 비상장 기업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휠을 생산 공장이다. 제품의 70%이상을 일본과 유럽 등 해외로 수출하며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있다. 
지회장 말이 끝나고 이어진 회계감사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울산에서 여기에 입사할 때 조금만 잘해줘도 노동조합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다시 노동조합을 했다는 것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노동자! 이 자본의 횡포에 어는 곳 어디라도 편한 곳이 있을까?

보고대회를 마치고 현장순회를 한 작업장은 철을 녹일 때 가스가 작업장에 가득한 것을 보며 작업장도 열악함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점심식사 시간에 성세경 조직부장 사회로 열린 집회에서 한국타이어 자본이 상견례를 안 하겠다는 데에 항의집회를 열었다. 집회는 1차 상견례는 10월 15일 10시로 잡혔다는 보고로 끝을 맺었다. 돌아갈 시간이다. 성부장과 인사를 하면 작은 사람이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 감탄한것을  생각해본것 이유가 콜텍조합원들과 한형제 자매처럼 슬픔과 기쁨을 같이 했기에 그 힙이 그바탕에서 나온 것으로 답을 찾을것 같다. 이렇게 작은 힘들이 이곳저곳에서 진실을 가진 작은 걸음들을 걷고 있다는 생각과 ASA지회, 콜텍지회 아니 모든 지회가 잘 될 거라는 희망을 보며 인천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큰 걸음이 아닌
작은 걸음도 
진실을 가지고 가자
그렇게 함께 걷는 길
외롭지 않을 것이다.
아픔세월
힘든 세월이라도

미움도, 아픔도
흐르는 세월 속
추운계절에도
보듬고, 안고 가는가!

아픔 뒤에 오는 진실
인간사랑 안에서
해방의 외침으로
아름다운 사람아
그리운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