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자의 노동권을 억압하는 사회, 그녀들에게 빵과 장미를!

by 일과건강 posted Mar 09, 20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민주노동당 서대문구여성위원회, 서울여성노동자회 양미, 일과건강 2007년 9월호




차별을 만들어내는 공간과 감정노동

 

상암월드컵홈에버 매장을 처음 찾았을 때였다. 까르푸시절부터 가장 큰 매장이자 매출 또한 가장 높은 매장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지금은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열심히 투쟁하는 이랜드일반노조 월드컵분회는 아직 없을 때. 월드컵분회 건설을 위해 이경옥 부위원장과 민주노동당 서부지역(서대문, 마포, 은평, 용산) 노동위원회와 비정규특위에서 매주 직원들과 고객들에게 선전물을 나누어주기로 한 후 처음 찾은 곳. 이곳저곳을 이경옥부위원장을 따라 다니며 둘러봤다. 일차적인 충격. 매장의 화려함과 크기와 끊임없이 밀려드는 ‘고객’들의 규모. 이차적인 충격과 분노. 그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창고 같은 직원식당과 보기에만 그럴듯하고 맛이라곤 없는 식당 밥. 그곳에 길게 늘어선 직원들의 피곤한 얼굴들. 그리고 역시 직원 수에 비해 턱없이 작고 창문조차 없어 환풍기 몇 개가 돌아가는 수용시설 같은 직원용 휴게실. 그나마 있는 휴게실은 이것뿐이라 휴게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 직원은 휴게실에 발을 들이기도 쉽지 않다. 워낙 밀려드는 고객 때문에 하루 30분(점심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앉아서 쉴 수 있는 시간,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여의치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이경옥부위원장의 말. “월드컵은 다른 매장에 비해 휴게실도 크고 시설도 괜찮은 것”이라고 했다. 그럼 다른 곳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고객의 공간과 직원들의 공간을 이렇게 철저하게 차별하고 구별 짓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즉 공간을 분리하고 차별지음으로써 고객과 직원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그것에 맞게 수행하게끔 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구별 지어진 공간은 고객에게 이곳 홈에버에서 일하는 직원이 근방에 사는 나의 이웃일 수 있다는 생각(가사노동 병행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여성노동자의 대부분은 자신이 거주하는 곳 근처에서 일자리를 찾는다)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넒은 매장에 들어서면서 이미 ‘왕’으로서의 신분을 만끽할 준비를 하고 실제로 몇몇 고객은 그렇게 대접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른바 진상고객.


직원 또한 이곳에서는 자신이 인간임을 잊고 그저 두 가지만 남는다. 일하고, 일하고, 일하다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또 일하고. 그렇게 해서 스스로의 신체와 감정을 맞추어 간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일이 많으면 당연히 참아야 한다. 내가 잠시 화장실을 가는 것 때문에 고객이 불편함을 겪게 해서야 되겠는가. 그렇게 해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고객을 위해 물건을 ‘까데기’해서 생긴 관절염도, 물건을 가득담은 카트들의 행렬로 고개 한번 제대로 들지 못하고 하루 종일 서서 계산하며 생긴 방광염도, 허리디스크, 하지정맥류도 이젠 나의 몸의 일부분이 된다. 그렇게 온 몸에 고질병을 훈장처럼 달고 일해야 했다. 더불어 흔히 서비스업에서 유행하는 모니터링 제도는 인간이면 가져야 할 감정을 통제함으로써 직원에게 이제는 ‘기계’일 것을 강요한다. 방금 진상고객이 한바탕하고 갔어도, 집에 아이가 아파 누워있어도, 친구와 싸워 마음이 울적해도, 힘든 노동으로 아이를 유산했어도 감정을 표현하고 인간임을 드러내어서는 안 된다. 이른바 감정노동.



반찬값 벌러 나온 아줌마들이란 말의 진실


한 달에 80만원. 그녀들이 자신의 정신과 신체를 ‘기계’로 내어주고 받는 돈이다. 이랜드 자본은 이것을 ‘반찬값’ 이란 표현으로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인식의 천박성을 드러내 주었다.


아이 학원비, 내 집 마련을 위한 비용, 비상시를 대비한 각종 보험비, 이런 것들을 감당하기 위해 결혼 전 또는 직후 그만두었던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 한 기혼여성도, 이혼․사별로 아이를 키우고 살아야 하는 한 부모 여성․독신여성도 ‘여성’이기 때문에 ‘반찬값’(2006년 8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는 남성정규직의 42%의 임금을 받는다)도 안 되는 돈을 벌며 일해 왔다. 1년, 9개월, 6개월, 3개월마다 재계약하며 5년, 10년을 근무하는데도 그녀들은 단기간, 단시간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여성’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인 것이 당연하다는 억지를 참아야 했다. 이렇게 해서 전체 여성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으로, 저임금으로 일한다. 이 사회가 ‘여성노동자’는 언제든 돌아갈 집이 있다고 외쳐대며 값싸고 빠른 손을 가진 유순한 노동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자리마저도 더 나빠지지 않도록(저임금 직접고용, 저임금 간접고용)지켜야 한다. 두 번씩이나 매장 점거투쟁이라는 투쟁을 강행했던 이랜드-뉴코아 투쟁, 용역전환을 거부했다고 해고된 후 단전단수까지 겪어야 했던 르네상스 호텔 룸 메이드, 한 달 전 500일을 넘긴 KTX 승무원… 등등 무수히 많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비정규투쟁의 상징이자 구심이 되는 이유다. 


차라리 보호한다고나 하지 말지


올해 7월1일부터 시행되는 ‘비정규직보호법’은 작년 12월 국회를 날치기로 통과했다. 이미 무수히 많은 시민단체로부터 비정규직 사용조건으로 ‘2년 미만’이라는 사용기간만을 명시하면 합법적으로 자행되는 ‘외주화’(하청노동으로 인한 노동조건의 하락과 용역회사가 바뀔 때마다 겪어야 하는 고용불안, 노동권의 무권리 상태)와 ‘2년 미만의 단기계약’ 반복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이 예견된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감행된 것이었다. 이미 저임금정규직노동자에서 저임금비정규직직접고용노동자, 용역노동자로 끊임없이 불안정화, 주변화 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에게 더욱 그 고통이 가중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그 경고를 무시한 결과가 이랜드자본의 합법적인 ‘외주화’ 및 중규직이라고 불리는 차별을 고착화하는 ‘직무급제’였다. 그것도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이랜드자본뿐만이 아니다. 애초에 ‘비정규직보호법’이라는 법 자체가 가진 한계를 백배 활용하려던 자본이 어디 이랜드자본 뿐이겠는가. 농협중앙회, 롯데호텔 등은 이미 외주화 방침을 발표했고, 이미 용역화 또는 분리 직군제를 진행했거나, 앞으로 진행할 계획이 있는 곳이 부지기수다. 


여성노동권, 그녀들에게 ‘빵과 장미’를


나는 매번 억울함과 분노를 느낀다! 여성노동권을 위한 투쟁은 더 나아지기 위한 투쟁이라기보다 더 나빠지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것에.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회에. ‘생산’을 위한 노동만을 ‘화폐가치’로 인정하고 ‘재생산’을 위한 노동은 ‘화폐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는 사회에. 여성의 돌봄을 위한 재생산노동을 사회화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저평가하고 가정에서의 일과 직장에서의 일을 양립하기를 요구하는 사회에. 여성의 노동을 희생하며 만들어진 이 사회에. 

여성에게 노동권은 ‘가정에서 일하지 않을 권리’와 ‘직장에서 일할 권리’가 공존한다. 

그래서 나는 요구한다. 그녀들에게 생존권으로서의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James Oppenheim)“모든 이에게 빵을, 그리고 장미도” - 서부 여성들의 슬로건(제임스 오펜하임)

우리가 환한 아름다운 대낮에 행진, 행진을 하자,헤아릴 수 없이 많은 컴컴한 부엌과 쟂빛 공장 다락이갑작스런 태양이 드러낸 광채를 받았네.사람들이 우리가 노래하는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행진하고 또 행진할 땐 남자를 위해서도 싸우네,왜냐하면 남자는 여성의 자식이고, 우린 그들을 다시 돌보네.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린 착취당하지 말아야만 하는데,마음과 몸이 모두 굶주리네: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할 때 수많은 여성이 죽어갔네,그 옛날 빵을 달라던 여성들의 노래로 울부짖으며,고된 노동을 하는 여성의 영혼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잘 알지 못하지만,그래, 우리가 싸우는 것은 빵을 위한 것 - 또 장미를 위해 싸우기도 하지.

우리들이 행진을 계속하기에 위대한 날들이 온다네--여성이 떨쳐 일어서면 인류가 떨쳐 일어서는 것--한 사람의 안락을 위해 열 사람이 혹사당하는 고된 노동과 게으름이 더 이상 없네.그러나 삶의 영광을 함께 나누네: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 함께 나누네.(시 번역: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