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이른 박수 소리에 묻힌 것은 없을까?

by 일과건강 posted Mar 0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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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7년 2월호




지난 연말 언론은 우리은행 노사가 합의한 ‘비정규직 3100여 명의 정규직화’란 ‘놀라운 사실’을 꽤나 꾸준히 보도했다. 대규모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 한다는 것은 액면 그대로 보면 그야말로 ‘파격’이었고 2007년 7월 시행을 앞 둔 비정규직 관련법을 앞두었다는 점에서 정부, 여당은 입에 침이 마를 정도의 과찬을 입장으로 밝혔다.


실제 우리은행 노사의 이런 발표가 있었을 때, 해당 비정규직은 물론 다른 은행 비정규직들이 상당히 부러워했다. IMF 이후 고용안정은 노동자가 원하는 ‘괜찮은 일자리’ 개념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정규직화가 ‘분리직군제’를 적용, 따로 인사관리를 한다는 점에서 불안한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드는 비용을 사용자측이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동결로 마련한다는 선례가 노무현 정부가 끊임없이 얘기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양보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홍보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민간 기업에 비해 정부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은행권에서 정부시책을 우선 실천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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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노조 비정규직 지부 권혜영 지부장도 “완전한 정규직이 아니라는 우려는 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고용불안과 차별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라며 현실 판단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이 해소된다는 의미는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용자 부담을 덜어준 것은 옳지 않다.”며 비판적 시각에 동의했다. 

사실, 금융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는 상당한 수준에 이른다. 노동자로서 임금 수준이 높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결코 비난 받을 일은 아니다. 때문에 정규직의 임금을 동결해 이룬 성과라는 점도 그다지 반갑지는 않다. 아니, 사측 반, 노동자 반이라고 했다면 그나마 고개를 끄덕였을 텐데 말이다. 참여정부 출범부터 끈질기게 유포한 ‘대기업 노동자의 희생’은 결국 자본의 논리였는데 그것을 수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노동자 연대는 고인돌 빼내 윗돌 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7년 IMF 직격탄을 맞은 은행권은 당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많은 업무에서 비정규직을 채용했다. 단순 입출금, 창구 업무 이외 영업지원과 관련한 다양한 후선업무, 콜센터 등 사측이 소위 ‘단순’하다고 여기는 업무는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행했다. 하지만, 현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단순입출금이란 안내가 붙은 창구업무를 보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더라도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의 실적과 업무연수를 요구받는다. 게다가 은행업무라는 것이 내 할 일만 마치면 끝이 아니라 업무 연계성이 높기 때문에 누구는 단순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실적은 동일하게 강조되지만 임금은 정규직의 50% 이하 수준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입장에서는 똑같이 실적을 강요받고 동일노동을 수행하는데 임금격차, 복지혜택 등에서의 차별이 심각한 수준으로 느껴졌다. 정규직들 역시 일하는 공간은 같은데 월급날이 돌아오면 왠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기곤 한다. 


그래서인지 권혜영 지부장은 이번 노사 합의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원화 된 느낌에서 둘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규직 임금동결로) 비정규직으로서는 정규직에 미안해한다. 사전에 정규직을 상대로 민주적인 동의절차가 필요했다. 정규직들도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는 정규직화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며 유니온샵으로 비정규직들도 자동으로 노동조합 조합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작년 12월 과도한 언론의 조명을 받은 우리은행 안에서는 ‘정규직 임금’이 동결된다는 보도에 조합원 불만이 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1월 19일 비공개로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노동조합의 설명을 들은 후 대의원들은 노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지지해주었다고 한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임금 동결 당사자인 조합원의 동의절차는 제쳐두고라도 정규직이 되는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의견은 반영이 되었을까? 권 지부장은 “노동조합 자체에 비정규직 조직화가 안 돼 있어 논의주체로 비정규직이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다만, 앞으로 조합원으로 조직화 된 후 실제 주체들이 노동조합으로 들어가 지금 부족한 것들, 문제되는 것들을 끊임없이 요구하면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체적인 면에서 금융노조 역시 힘을 받을 것이라는 권 지부장은 “이들 조직화가 쉽지는 않겠지만 어렵다고만 볼 수는 없다.”며 긍정적인 면에 힘을 실었다.


그런데, 우리은행은 2006년 10월 즈음,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은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계약동의서’를 받았다. 기존 사무행원이던 명칭이 바뀌고 이후 지위 변경에 동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이번 정규직화 대상이 안 된다. 주민세, 자동차세 등의 세금을 집계․분리, 구청으로 보내주는 OCR팀도 대상 중 한 부류였다. 우리은행 OCR팀의 한 노동자는 “계약변경동의서를 쓸 당시 우리가 왜 이걸 서명해야 하는 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고 그런 이해 없이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와 보니 정규직화 대상에서 사전에 제외할 노동자를 거른 것”이라며 허탈해 했다. 권혜영 지부장도 “2006년, 직군분리제를 만들 당시 업무평가를 통해 2년마다 20% 정도를 자르는 제도가 포함되어 있었다.”며 “만약 이런 것이 사전작업으로 걸러낸다는 의미라면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저런 비판과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비정규직들이 ‘고용안정’을 갖게 된 정규직화는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그 성과에 박수를 보내기에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다. ‘성차별 제도의 전형이었던 여행원제 부활’ ‘법 시행을 앞두고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금지 회피 수단 ’ ‘비정규직의 2류 정규직화’란 비판을 앞으로 어떻게 풀어 가느냐는 단지 우리은행 노사의 문제가 아닐 게다. 그리고 박수는 그런 것들이 해결된 시점에서 쳐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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