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 샷~’ 뒤에는 골프 노동자들이 있다

by 일과건강 posted Mar 0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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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일과건강 2006년 9월호




어디하나 삐죽 튀어나온 곳 없이 정돈된 시원한 녹색 빛의 잔디, ‘윙~~’하는 힘찬 스윙소리와 그 뒤를 잇는 박수소리와 한 마디 “나이스 샷!!”


정치인, 고위 공직자와 언론인, 재벌 그리고 어느 정도 된다하는 사업장들의 사장님들이라면 (물론 모두라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고층 건물 빽빽한 도심을 떠나 시원스레 확보된 자연경관을 벗 삼아 아직은 서민․대중 스포츠라 할 수 없는 골프를 즐겨봤을 것이다. 

골프 혹은 골프장 하면 대학 혹은 백수 시절 어디 짭짤한 아르바이트 없나 하는 생각에 뒤져봤던 벼룩시장, 교차로 등 생활정보지를 뒤적이며 눈여겨본 ‘골프캐디 모집광고’와 공익광고에서 조수미의 절묘한 고음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던 박세리의 저수지 샷이다. 수해 골프, 접대 골프, 한국선수가 선사하는 감동의 LPGA 골프 등 우리는 ‘골프’ 얘기는 종종 듣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삶은 잘 모른다.


골프장은 CC와 GC가 있다. CC는 규모가 큰 편으로 회원제로 운영되는데 회원권이 적게는 3천만 원에서 높게는 10억 원까지 한단다. GC는 골프클럽으로 CC보다 대중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대한민국에는 개인이 소유한 동양최대 레이크사이드라는 CC가 있다. 소주 한 병이 만원, 김치찌개 식사가 7만원이라고 하니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어떤 계층이라는 사실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레이크사이드에서 ‘나이스 샷~~’을 외치게 해주는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인정받으려고 일 년이 다되도록 싸워야 했다. 2005년 7월 말 시작된 경영권 분쟁으로 ‘내 편에 서지 않으면 물갈이’를 하겠다는 유언비어가 돌기 시작했고 실제 적정인력을 초과한 신입사원 대거 채용, 신․구 직원 차별대우, 해고자 양산 등 고용불안이 시작됐다. 

직원들은 “더 이상 눈칫밥 먹지 발고 지금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해보자.”며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되돌아온 것은 교섭 거부, 용역깡패 고용, 부당해고 등 노조탄압이었다. 노동조합의 파업에 사측은 파업에 동참한 조합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직장폐쇄를 공고했다. 투쟁 과정에서 경기지방노동위원회가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고 수원노동청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불법대체인력, 최저임금지급, 체불임금 등 26개 항목의 위법사항을 적발하였지만 사측은 움직이지 않았다. 투쟁이 이어지면서 사측 구사대와의 충돌도 잦았고 그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는 조합원과 연대 노동자들이 속출했다.


급기야 2006년 7월 7일에는 ‘사제 화학물질’까지 등장했다. 레이크사이드 조합원과 연대 노동자들 9백여 명의 대표이사 교섭 요구에 용역깡패와 구사대를 동원해 충돌이 빚어졌다. 맨 손이었던 노동자들에 비해 용역깡패와 구사대는 쇠파이프, 죽봉, 소화기, 톱 등 사실상 무기역할을 하는 도구들과 함께 ‘노란색 화학물질’과 ‘붉은색 화학물질’을 가지고 있었고 충돌과정에서 이것들을 노동자들을 향해 뿌렸다. 용인경찰서에서 전투경찰이 배치되었지만 폭력을 가하는 용역깡패와 구사대를 제재하기는커녕 묵인하고 심지어는 이들을 에워싸 보호하는 진풍경을 나타냈다. 

붉은색 화학물질이 닿은 조끼는 녹아 구멍이 났고 노란색 화학물질을 눈에 맞은 조합원은 실명위기를 겨우 넘겼다. ‘화학물질에 의한 화상’이란 진단이 내려져 노란색 화학물질을 성분분석 했더니 아세트산이 들어간 겨자혼합액이란 결과를 받았다고 한다. 산성이 높은 아세트산이 사람 눈이나 피부에 직접 닿으면 유해한 건강영향을 나타낼 수 있는데, 이 겨자혼합액이 하필이면 눈에 들어갔던 것이다. 폭행에 노출된 다수 노동자들도 부상을 입었다. 노동조합만 없어진다면 어떤 수단이라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일까?


아직은 대한민국이 이런 곳이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인정받는 것이 투쟁을 통하지 않으면 힘든 그런 곳이다. 레이크사이드CC 노동조합 역시 요구사항 1순위가 노동조합 인정이었다. 꿋꿋하게 버텨준 조합원이 있어 노조는 8월 28일 교섭을 마무리 짓는다. 회사는 노조를 인정했고, 해고철회, 고용안정과 업무복귀 시 인사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는 문서에 서명했다. 317일 만이다. 노조 장보금 사무국장은 “노동조합이 원하는 수준으로 합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이후 후속 조치들을 어떻게 잘 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며 소회를 밝혔다. 

8월 29일부터 9월 1일까지 국제노동기구(ILO) 아시아태평양지역총회가 열렸다. 노동조합 인정이 이다지도 힘든 우리나라가 총회를 개최할 자격이 있었는지 정부에게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