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건강, 2006년 6월호원진교육센터 이현정(nolza21c@paran.com)
▲‘구조조정과 노동강도 강화’를 주제로 한 금속연맹 정책토론회에 많은 노동조합 간부들이 참석했다.
임금삭감 없는, 노동강도 강화 없는, 고용불안 없는, 노동자 건강권과 인간답게 살 권리를 확보하면서 교대근무체계를 개선할 수 있을까? 에디슨의 전기발명 덕분에 24시간 생산체계가 가능해지면서 사실상 노동자는 ‘돈’과 ‘건강’을 맞바꾸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현대사회에서도 교대노동은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계륵이 아닐까 싶다. 정년퇴직이란 개념이 사라지고 로또 1등 당첨이 여러 번 되지 않는 이상 지금 노동자들은 ‘건강할 때, 직장에 있을 때 뼈 빠지게 일해 돈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씩은 자리잡고 있다. 낮과 밤이 바뀌고 신체리듬을 거스르는 교대노동이 건강에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인생 역전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최소한 ‘난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려면 생산직 노동자에게 교대노동은 필수조건이지 않을까?
지난 5월 16일,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은 ‘구조조정과 노동강도 강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란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점령당한 이데올로기, 무너진 현장, 망가진 몸과 삶’이란 부제는 지금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나타냈다. 이날 발제된 현대자동차 주간연속 2교대제를 중심으로 한 ‘교대제 연구의 함의점과 현장 대응방안’(안양노동정책실 박우옥)과 ‘노동강도 평가사업의 주요 내용과 대응방안’(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공유정옥)은 바로 교대노동, 노동강도 강화로 몸이 망가진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제안이요, 주장이었다.
먼저 박두옥 연구원은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들이 2003년 기준 연간 2,525시간을 노동하고 3,000시간 초과노동도 1,567명에 이른다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 노동자라고 밝혔다. 이런 노동시간이 나온 것은 주야맞교대, 철야, 특근 등의 노동형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철야, 특근, 휴일근로를 하는 이유는 ‘생활하기 위해서’(그래프 참조)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생활임금을 확보하기 위해 주야맞교대 야간노동과 연장노동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노동자들 삶과 건강이 제대로 일리는 없다. 주야맞교대와 야간노동으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짧다보니 배우자나 가족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특히, 수면장해, 위장장해, 정신장해 등 이런저런 건강장해를 갖고 있었다. 독일의 유명한 자동차회사 다임러크라이슬러는 10만 명의 노동자가 111만대를 생산하는데 반해 현대자동차는 5만1천 명의 노동자가 127만대를 생산한다고 하니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얼마가 막강한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박두옥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고용비용까지도 줄이기 위해 가장 열악한 고용형태인 주야맞교대제를 도입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자본은 3배나 많은 이윤을 얻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생명은 단축되는 상황”이라며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 주야맞교대제가 아닌 주간연속 2교대제를 제안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2005년 임단협 핵심 쟁점 중 하나로 주야맞교대의 주간연속 2교대제 전환을 요구했는데 그 원칙이 바로 △건강하고 인간답게 살 권리 쟁취 △실질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연장 없는 △노동강도 강화 없는 △고용불안 없는 주간연속 2교대제이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공유정옥 소장은 현대자동차 노동강도 강화의 핵심은 ‘구조조정의 일상화’에 있다고 지적했다. 즉 공장마다, 부서마다, 반마다,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내용으로 구조조정을 추진, 노동자들 처지와 요구를 조각내 단결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IMF로 대량 정리해고를 경험한 노동자들은 자본이 끊임없이 조장하는 고용불안감으로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마다하지 않으며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는 회사 발전에 협력해야 한다는 ‘고용이데올로기’가 퍼지면서 노동자 대응력이 갈수록 약화되었다.
공유정옥 소장은 노동강도 강화는 노동자에게 근골격계 직업병, 과로사 등 노동자 건강 문제로 드러났다면서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해 △50분 일하고 10분 쉬기 △작업 중 여유율 쟁취 △작업량/속도 30~40%낮추기를 주장했다. 또한 실천제안으로 맨아워(Man Hour)투쟁을 제안했는데, 자본의 이윤과 생산 계획에 따라 결정해 온 맨아워를 ‘노동자의 몸과 삶’이라는 노동자 기준으로 재평가하고 실천적 투쟁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진 토론자 토론과 참석자 토론에서는 노동강도 강화와 고용이데올로기와의 연관성을 끊을 수 있는 실천적 방법들이 고민되었다. 금속노조 박세민 노동안전국장은 “활동가들조차 고용불안 이데올로기에 젖어 있다”며 현장 민주주의 복원과 새로운 노동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단위노조와 지회에서 △노동강도 설문조사 사업과 노동안전보건 실태조사 사업을 실시 △근골격계질환 예방 투쟁과 인정투쟁 재조직을 실천과제로 제안했다.
구조조정, 노동강도 강화 대응 투쟁 현장사례를 얘기한 두원정공 노동조합 이기만 위원장은 “구조조정을 경험한 노동자들이 ‘회사가 잘 돼야 나도 잘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1,000명이 생산하던 물량을 678명이 소화하는 지경이었다”며 강화된 노동강도로 노동자들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고 소개했다. 노조는 2002년, 구조조정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근골집단요양투쟁을 벌였다. 현장개선 주도권을 노동조합이 갖도록 활동하면서 ‘물량=고용’이라는 개념이 깨지고 현장도 바뀌었다고 한다.
▲노동강도평가 전체회의를 진행하며 사업방향을 논의하고 있는 현대자동자 노동조합(사진_현대자동차노조)
2003년 늦여름께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가 1년에 166일을 놀면서 연봉 6천만 원을 받는다는 언론보도는 기본급이 평균 115만 원인 14년차가 1년 365일 중 362일 출근하여 3,000시간을 일해야 연 4천만 원을 받을 수 있는 노동자를 울렸다. IMF 이후 일상화된 구조조정, 여전히 ‘성장우선’인 경제정책, 해외공장이전을 만병통치약 위협수단으로 삼고 있는 자본 때문에 노동자는 편히 쉴 날이 없다. 오히려 ‘노는 날’이 불안하다는 어느 노동자의 한 숨 섞인 고백은 노동강도 강화가 노동자 삶을 어떻게 유린하고 있는 지 보여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노동시키는 현대자동차는 일명 GT-5(Global Top-5), 세계시장 5위권 진입을 내세워 ‘회사를 살려야만 노동자도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비단, 현대자동차만이 아니라 IMF 이후 안정된 일자리를 갈망하는 노동자를 상대로 모든 자본이 들이밀고 있는 논리이다. 노동자가 건강하지 않은데, 골병들고 과로로 픽픽 쓰러지는 데, 세계시장 진입이나 세계 몇 위는 과연 누구에게 의미가 있는 걸까?
금속노조의 고민과 실천과제들이 현장에서 활발하게 실현되고, 어느 날 구조조정과 노동강도 강화 대응 성과사례를 중심으로 한 토론회가 열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