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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연구원 이황현아, 일과건강 2008년 6월호 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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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영에서 고객중심주의가 중요한 위치로 떠오른 것은 90년대부터다. 마케팅에서 고객관계관리(CRM)라는 경영기법이 강조되면서 고객중심주의가 진화한 것이다. 처음에는 고객만족이더니 이제는 너나할 것 없이 고객감동을 표방한다. 지식경영이니 감성경영이니 하는 것들도 그 앞에 고객중심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고객중심의 지식경영이나 고객중심의 감성경영이 된다. 아이엠에프시대 어려운 경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치열해지면서 기업들은 고객만족을 넘어서 고객감동을 주창하게 되었다. 고객감동은 고객의 충성도를 장기적으로 유지하여 고객을 단순한 소비자에서 벗어나서 우리 제품 또는 서비스의 평생고객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이제 고객만족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고객을 마음속에서 감동시키는 고객감동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화가 나도 고객 폭언에도 ‘언제나 생글생글’

 

친절은 기본이고 세계 초일류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기업 환경 속에서 ‘고객제일주의’,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무한책임주의’와 같은 표어들을 내걸고 고객만족경영이 경영이념으로서 매우 폭넓게 확산되어 있다. 그런데 경영합리화 전략의 일환인 고객중심주의는 말 그대로 고객이 중심이 되니 아무런 문제없이 좋기만 한 것인가?
고객만족에서 고객감동으로! 이로 인해 서비스산업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심화되고 있다. 이들 노동은 업종 특성상 서서 일하는 경우가 많고, 고객을 언제나 친절하게 응대해야하는 성격이다. 이들 노동의 성격을 감정노동이라 하는 이유는 자발적인 친절이 아닌 친절을 항상 강요당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들은 고객에게 의지를 갖고 항상 친절하고 기쁜 마음 상태를 생산해내야만 한다. 시장주의가 지고지상의 가치로 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고객감동을 향한 경영합리화는 더 한층 강화될 것이니 서비스산업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투쟁 일 년을 맞이하는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을 보자.
이랜드 노동자들은 고객응대에 따른 친절에 대해 혀를 내두른다. 언제나 환한 미소로 “어서 오십시오.”로 시작되는 고객응대는 인간의 감정을 극도로 통제하는 감정노동을 유발하여 노동자들을 지치게 만든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와도 상을 입었어도 고객 앞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생글생글 웃어야 한다. 노동자들은 호소한다. “이러다 미쳐버리겠다”고. 쏟아지는 폭언에도 싫은 표정 한 번 내비칠 수 없는 일상 탓에 이들 노동자들은 우울증에 빠지거나 정신병의 일종인 분열증을 경험하다 심해지면 대인기피증에 이른다고 한다. 뉴코아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화장실 사건을 이야기한다.
계산대에서 끊임없이 고객을 응대하느라 화장실을 가지 못해 방광염에 걸렸다는 것이다. 물론 혼자만 그런 건 아니다. 같이 일하는 거의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더 좋은 서비스, 가족 같은 분위기, 친절서비스의 희생양이 되면서 방광염, 위장병, 하지정맥류와 같은 병들을 달고 산다. 기본적인 생리욕구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화장실 휴식’은 쟁취해야할 1번 과제인 셈이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란 고객의 감정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노동형태를 말한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식당, 승무원, 판매원 등 서비스산업이나 소비자 불만을 처리하는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업무가 이에 해당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낯빛을 붉히지 말고, 지나치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에게도 웃는 얼굴로 응대하라! 이건 처세술이 아니다. 직업적으로 늘 그래야하는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캐치프레이즈다. 친절한 서비스와 환한 웃음, 그리고 배려. 관광, 여행, 유흥 등 서비스산업들이 늘어가면서 감정노동의 영역이 훨씬 더 확장되고 있다. 억지로 웃음 짓고, 허리를 굽히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다듬는 행위들 역시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엄연히 노동이다.
 
감정노동은 딱히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의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우리들의 일상적 삶 속에서 우리가 표현해야 하는 위장된 행동과 얼굴 표정, 몸짓들이 우리의 진정한 자아와 괴리된다는 점에서 일정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서비스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감정노동과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 감정노동은 다르다. 서비스노동자들이 자신의 감정노동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당장 생계전선에 문제가 생기지만, 우리들은 기껏해야 의시소통의 장애를 겪는 정도로 그치지 않나.

 

# 웃다가 병든 사람들, 서비스 노동자

 

세계화 흐름은 서비스산업화를 촉진하고 동시에 서비스노동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비중을 늘려나간다. 가사노동을 비롯한 감정노동 영역이 급속하게 상품화되면서 많은 여성들이 집밖으로 나왔다. 정보화시대가 이제까지 산업사회에서 ‘여성적’이라고 규정짓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감성을 주요한 노동의 자질로 만들면서 성별위계도 해체될 것이라 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서비스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거 여성노동자들로 채워졌다. 이들은 헐값에 그것도 임시직으로 생계를 위해 일상적인 성차별적인 모욕과 억압을 감내하며 일하고 있다. 이른바 ‘서비스계급의 여성화’가 ‘빈곤의 여성화’나 ‘노동의 여성화’와 마찬가지로 확산되는 것이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라 할 세계화 속에서 이른바 여성적이라 규정되는 성향이나 섹슈얼리티가 서비스노동과 결합되어 성차별적 과정을 양산한다. 여성성이라는 생물학적, 문화적 성별성이 권력과 자원을 차별적으로 분배하는 기제로 작동하면서 전 지구적 자본주의 질서 안에 편입된 여성은 온갖 감정노동을 감내해야한다. 여성 감정노동자들의 노동은 사회적으로 낮게 평가되고 있다. 감정노동이 노동으로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의 사적 공간인 가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성들은 가정에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하는데, 이 역할들 속에는 근력을 쓰는 일, 머리를 쓰는 일, 요리를 하는 일 등 다양한 노동이 존재함에도 노동 그 자체로서 존재하기보다는 가족에 대한 보살핌이라는 의미에 종속돼 있다.

 

고객지향적인 기업문화, 자율적 능동적 참여, 한 가족 한마음 분위기 조성이라는 고객만족경영이 확산되고, 고객감동 서비스의 중요성이 높아질수록 서비스노동자들의 감정노동과 이로 인한 직무스트레스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서비스산업에 있는 사람들을 집중 취재한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은 미소 지으며 고객을 응대하는 사람들을 “웃다가 병든 사람들”이라 칭했다. 백화점들은 ‘미소의 여왕’을 선발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감정 생산에 경쟁을 도입하기도 한다. 고객들의 편의를 제공하는 서비스산업 노동자들의 당연했던 친절과 배려, 그리고 미소가 손님인 나에게 제공한 노동이었던 것을 깨닫는 건 그리 힘든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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