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호르몬과 건강영향

#1. 며칠 전 휴가기간 아침식사로 간단히 김밥을 먹으러 편의점에 갔다. “데워드릴까요?”라는 점원의 물음에 무심코 “네”했더니 김밥의 비닐과 호일을 벗기지 않고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것이다. 김밥뿐만 아니다. 컵라면, 샌드위치 등도 비닐을 벗기지 않은 채 전자레인지에 데운다고 한다.
#2. 다른 병원들처럼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도 환자 보호자용 전자레인지가 있다. 식사 시간 때면, 집에서 가져온 음식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를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넣어 데우고 있다.
이 두 경우 틀림없이 환경호르몬(내분비계장애물질)을 다량으로 먹게 된다. 환경호르몬은 열에 매우 취약하여, 조금 높은 온도에도 용출되기 때문이다.

20140923.jpg ‘환경호르몬’이란 내분비계장애물질이라 불리우며, 내분비계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는 화학물질로서 환경 중으로 배출된 화학물질이 체내에 들어와 호르몬과 같은 작용을 한다. 환경호르몬이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준다고 알려진 시작한 시기 1990년대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히려 환경호르몬의 유해성은 야생동물에서부터 알려졌고, 현재 인간에게 미치는 유해성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내분비계장애물질이 야생동물에서 비정상적인 생식기관의 발생 및 발달을 초래한다는 보고는 1960년대부터 있어 왔으며 그 대상도 파충류, 어류, 조류, 포유류 등 광범위하다. 정자 수의 감소, 수컷 생식기 크기의 감소, 수컷 생식기의 암컷화, 생식행동 이상, 수정률 감소, 개체 수 감소 등이 발표되어 왔다. (사진 : 환경호르몬 물질들의 화학구조, 네이버)
 
환경호르몬은 인간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는데,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환경호르몬의 영향은 크게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생식기능 감소, 생식기계 기형, 불임, 성조숙증(최근 한국에서 성조숙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등 생식기 장애
둘째, 유방암, 질암 등 각종 암(최근 영국의 연구에서 유방암 환자의 유방조직 파라벤이라는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어, 환경호르몬이 유방암의 원인물질로 의심되고 있다).
셋째, 기억력 감소, 학습장애, 우울증 등 정신질환(한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캔음료나 플라스틱 용기에 많이 있는 비스페놀A 농도를 측정했더니 외국의 어린이보다 혈중 농도가 높았고, 비스페놀A 농도가 높은 아이들이 아이큐가 떨어지고, 우울증상이 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넷째, 아토피, 천식 등 각종 알러지질환(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내 유치원, 어린이집 먼지에서 프탈레이트라는 환경호르몬이 다량으로 검출되었다).
다섯째, 당뇨병, 비만, 대사증후군과의 관련이 있다. 한국의 성인 당뇨병 유병률이 미국을 앞질렀다. 성인 당뇨병은 비만과 관련이 있는데, 미국인보다 비만 인구가 적은 한국인이 당뇨병 유병률이 높은 이유는 화학물질 사용량이 높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환경호르몬에 노출은 당뇨병뿐만 아니라 비만, 대사증후군을 증가시킨다.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화학물질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되었고, 환경호르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생활 주변에 환경호르몬은 지천으로 널려져 있고, 우리는 쉽게 환경호르몬에 노출된다. 앞서 이야기한 플라스틱 식품용기나 캔음료 이외에도 치약, 삼퓨, 화장품 등 생활용품, 바닥재, 벽지, 커텐 등 건축 용품, 지우개, 고무판화, 필통 등 학용품 등등 우리 주변의 모든 물질에 환경호르몬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환경호르몬은 이렇듯 일상생활에 쉽게 노출된다는 특성 이외에도 몇 가지 좋지 않은 특성이 있다. 환경호르몬의 특성 중 또 다른 하나는 열에 약하고, 상처가 생기면 쉽게 용출된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식품용기를 전자레인지에 데우거나, 물병을 여름철 승용차 안에 두거나, 음료를 찌그려 트리면 환경호르몬이 많이 나오게 된다. 

환경호르몬 중 상당수는 잔류성 물질로 없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환경에 남아 있다. 대표적 환경 호르몬인 다이옥신은 반감기가 수십 년이며, 화재 발생시 불에 잘 타지 말라고 건축용품에 첨가하는 브롬화 난연제로 인해 청정지역인 북극의 곰이 집단 폐사한 사례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환경호르몬은 안전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기준은 기업에서 제품을 생산하면서 필요한 환경호르몬을 줄이라는 기준이지 인체에 해가 없다는 기준이 아니다. 오히려 환경호르몬은 안전기준 이하의 농도인 저농도에서 오히려 반응을 보이다가 농도가 증가하면 반응성을 보이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수많은 화학물질에 대한 저농도 노출이 결코 안전하지 않을 가능성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환경호르몬에 의한 독성과 위해성을 평가하기 위한 연구는 9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왔으나, 아직까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많은 부분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임부부, 유방암, 성조숙증, 당뇨와 비만의 증가는 우리환경을 비롯한 주변의 여러 가지 생활용품들의 유해성과 관련이 있어 이에 대한 관리와 예방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현명한 소비자가 될 수밖에 없다. 제품에 어떤 물질이 사용되었고, 그 유해성이 어떤지 알려주지 않는 기업과 정부로 인해 소비자가 스스로 공부하여 정보를 알고 다른 소비자와 공유하고, 안전한 제품을 공동구매하는 현명한 소비가 필요하다. 플라스틱 용기 대신 유리 식품용기를 사용하고, PVC 없는 학용품을 구매하는 행동과 더불어 지역 주민들이 학교 앞 문구점과 동네 시장을 환경호르몬 없는 제품 공동구매 창구로 사용하는 것은 어떤가? 학부모, 문구점, 시장상인이 의논하여 환경호르몬 없는 대안제품을 찾고 판매하고, 구입하며, 지자체는 환경호르몬 없는 대안제품을 생산하는 기업과 대안 제품 목록을 작성해주고, 공급망(물류)을 지원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글 : 임상혁(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