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비밀주의와 국가경쟁력


글 :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기업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신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높은 기술력으로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기업이 되었다. 그런데 이 정보가 정부기관에 의해 공개된다. 어느 날 갑자기 기업의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 기업은 다시는 신기술을 개발하지 않을지 모른다. 다른 기업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모든 기업들이 신기술에 투자를 꺼리게 되면, 결국 대한민국 국가 경쟁력에 심각한 문제가 찾아올 것이다.” 


최근 법원이 공개하라고 명령한 삼성 작업환경측정보고서에 국가 핵심기술이 들어있다는 산업부의 입장을 들은 국민들은 이런 걱정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염려마시라. 이런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까.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까지 기업의 비밀을 보호하는데 앞장서왔고, 이 때문에 국민 건강보다 기업의 이윤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 고용노동부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 결정은 법원 판결에 근거한 것이다. 법원은 보고서가 기업의 비밀이라고 보기 어려우니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래서 고용노동부가 자료를 공개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법원은 국가 핵심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는 모든 비밀이 공개되어야 한다는 아주 강력한 원칙을 가졌을까? 아니다. 고용노동부나 법원이나 모두 알권리에 대해 오히려 보수적으로 규정을 철저히 따지는 ‘정부기관’일 뿐이다. 


사실은 이러하다. 삼성에서 병에 걸린 환자들이 산업재해 신청을 하는데 자신의 환경이 어떠했는지 입증할 자료가 필요했다. 삼성으로부터는 제대로 된 자료를 받지 못했고, 정부가 가진 측정보고서를 사용하면 되겠다고 생각해 자료를 요청했다. 고용노동부는 이 자료는 공개용이 아니라며 거부했다. 결국 환자들은 자료를 공개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법원이 공개를 명령했다. 비밀이라 할 만한 정보가 없어 보이는데다가 당사자들의 피해를 주장할 권리를 보호하는데 필수적인 정보이기 때문이었다. 


기업의 경쟁력은 매우 중요하다. 경쟁력을 위한 비밀 정보는 보호되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 정보나 비밀이라고 주장하는 기업은 국가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모름지기 경쟁력이란 경쟁에서 생기는 힘이다. 아무거나 비밀이라고 주장하는 기업은 누군가 자기 기업에 대해 아는 것이 그냥 싫은 기업일 수 있다. 가장 나쁜 경우는 안전을 위한 노력을 철저히 하지 않거나 불법·탈법이 많을 때 이를 숨기려고 비밀주의를 들고 나올 때도 있다. 전 세계의 화학산업을 선도하는 유럽은 가장 강력한 기업 비밀 심사기준을 가지고 있다. 가장 많은 정보가 공개된다는 뜻이다. 진정한 비밀은 제대로 보호하지만, 비밀이 아닌 것은 공개하도록 해야만 기업 혁신이 따라오고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유럽에서 강력한 화학물질 규제가 새로 등장할 때도 유럽 기업은 모두 걱정의 목소리를 냈고 반대했다. 그러나 새 법률 때문에 안전하고 새로운 화학물질 개발이 촉진되고 특허 신청이 증가했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확인된 사실이다.



가짜 비밀을 지켜줄 땐 기업의 혁신이 찾아오지 않으며, 오히려 비밀에 대해 엄격할 때 국가경쟁력이 강화된다는 진리를 이제 우리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