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알권리
2015.01.05 09:17

알권리를 위한 싸움, 제대로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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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권리를 위한 싸움, 제대로 준비하자
- 뉴스타파에서 미국 삼성반도체 공장 화학물질정보를 공개한 것에 부쳐

글 : 김신범(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

최근 뉴스타파에서 미국과 우리나라의 기업비밀을 비교하여 뉴스를 보도한 바 있다. 미국 오스틴에 있는 삼성반도체로부터 자료를 받아 공개하였는데, 취급물질의 이름과 사용량이 자세히 드러나 있었다. 국내에서 취급물질은 물론 작업환경측정 결과까지도 기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던 삼성의 모습을 기억하는 국민들에게 상당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뉴스타파는 <미국에선 공개, 한국에선 비밀…삼성의 두 얼굴>이라고 뉴스 제목을 정했다. 분명 화가 나는 일이지만, 삼성 참 나쁘다고 성질 한 번 내고 넘어간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 아니기에 한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바로, 미국은 왜 이게 가능하고 한국에서는 불가능한지 곰곰이 따져보고 우리의 나아갈 바를 의논하자는 제안이다. 우선, 미국에서 어떻게 이게 가능했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1970년대 미국에서는 급증하는 암환자들과 직업병과 공해병 환자들을 보면서, 더 이상 화학물질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 같은 화학물질을 규제하는 법률이 만들어졌지만, 미국의 노동자와 주민들은 만족할 수 없었다. 이들이 원한 것은 화학물질에 대한 알권리법이었다. 당시 친환경을 내건 민주당 카터 행정부가 들어섰지만, 알권리법에 대한 기업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결국 연방법 제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미국의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은 뉴욕주, 뉴저지주, 필라델피아주 등 곳곳에서 지역주민과 노동자의 알권리법을 제정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1980년부터의 일이다. 이 법률들은 화학제품의 성분명을 공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이제 기업들이 난리가 났다. 연방법을 막았더니 다양한 주법이 만들어져서 오히려 더 문제가 커진 것이다. 기업들은 하나로 단결해서 이번엔 알권리에 대한 연방법을 제정하자고 주장했다. 마침 규제완화를 내건 레이건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입맛에 맞는 연방법을 제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연방법은 주법에 우선하기 때문에 연방법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으면 각 주에서 고생해서 만든 알권리법이 무력화된다. 결국, 1983년 기업비밀을 대폭 인정하는 엉성한 물질안전보건자료 제도가 도입되었다. 연방법인 산업안전보건법 내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이제 주법들은 무력화될 처지에 놓였다. 미국의 주민과 노동자들로서는 좌절도 이렇게 큰 좌절이 없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싸움을 시작했다. 법원으로 소송을 걸어서 연방법이 주법을 무력화하지 못하게 노력했다. 그러나 일부 법조항을 개정하기는 하였으나, 주법을 무력화하는 것은 막아내지 못하였다. 또 다시 좌절. 그런데 이 때 인도에서 보팔사고가 발생하였다. 1984년 말의 일이다. 수십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화학참사를 겪으며 또 다시 알권리법과 사고대응에 관한 법률 제정운동이 힘을 냈다. 마침내 1986년 ‘비상대응계획과 지역사회알권리에 관한 법률(EPCRA)'이 연방법으로 제정된다. 그리고 이 법률은 주법을 무력화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들어있다. 연방법은 최소한의 법률이므로 각 주에서 주민의 알권리를 더 보장하고 기업의 정보를 더 많이 요구해도 좋다는 것이 법률의 정신으로 선언되었다. 뉴스타파는 바로 이 법률을 통해 삼성반도체 오스틴 공장으로부터 화학물질 정보를 받아낸 것뿐이다. 우리를 돌이켜보자면, 최근에서야 알권리법 제정운동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뉴스타파 보도를 보면서 부끄럽고 속상해야 하는 대상은 삼성이라기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아니었을까?

다행히 기쁜 소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산사고를 겪으면서 미국의 지역사회 알권리법을 본 딴 화학물질관리법이 2015년 올해부터 시행된다는 것이다. 이제 정부가 기업들을 대상으로 화학물질 실태조사를 한 결과는 기본적으로 공개를 원칙으로 하게 되었다. 절차는 조금 다르지만, 뉴스타파가 미국에서 받은 자료를 이제 국내에서도 받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 좋겠다. 기업측은 정보를 최소한으로 공개하기 위해 환경부에게 압력을 계속 넣을 것이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화학물질관리법은 금방 무력화될 것이 뻔하다. 그러니, 우리는 기업의 화학물질 정보가 왜 노동자와 주민에게 제공되어야만 하는지 사회적인 인식과 관점이 수립되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에서 그간 벌여온 정보공개청구운동이나 지역사회알권리 조례 제정운동이 더 많은 지역에서 펼쳐지도록 해야 하고, 더 많은 주민과 노동자들과 이 운동이 함께 호흡해야 한다. 알권리가 보장되어야 안전한 지역사회가 만들어지고 노동자들의 건강이 지켜진다는 것을 한국사회 전체가 인정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힘으로, 화학물질관리법에 지역별로 주민협의체 설치를 의무화하도록 법개정을 이끌어내야 한다. 화학물질정보를 통해 지역사회가 스스로 위험을 진단하고 용납할 수 없는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틀을 제도적으로 확보해내야 한다. 주민의 참여와 결정은 화관법을 알권리법으로 만드느냐 아니냐의 기준과 같은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한가지를 부탁하고 싶다. 만연한 기업비밀이 하루아침에 뿌리뽑힐 것으로 기대하지 않으면 좋겠다. 기업의 비밀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함부로 기업비밀을 남용하지 못하게 제동을 거는 장치들을 이제부터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자극성물질 정도로 경미한 독성물질에 대해서만 기업비밀이 인정된다. 물질안전보건자료와 라벨에 성분 정보가 모두 공개되어야 하며, 만약 기업비밀로 성분명을 숨기고자 한다면 사전에 유럽정부에게 기업비밀 신청을 해서 사전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미국의 지역사회 알권리법에서도 기업비밀은 사전 승인을 원칙으로 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물질안전보건자료의 기업비밀은 너무도 흔해서 기업비밀이 없으면 오히려 신기할 정도이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1월부터 3월 초까지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을 위한 화학물질강좌를 매주 운영한다. 주제는 ‘알권리와 기업비밀’이다. 기업비밀을 제한하고 노동자와 주민의 알권리를 찾는 운동을 이제 본격적으로 준비해보자. 노동자와 지역주민과 소비자가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나가 되어 우리 모두의 알권리를 쟁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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