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알권리
2014.03.27 10:33

‘이웃의 살인자’, 벌써 여럿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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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살인자’, 벌써 여럿 당했습니다
[이웃의 살인자②] 최근 우리나라 화학물질 사고의 공통점 찾기

누구도 알지 못했다. 우리 아파트, 학교, 과수원 근처에서 독성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이 있다는 것을. 이 고약한 냄새는 금세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쉽게 내 몸을 망가뜨릴 줄은 몰랐다. 사전에 알려줬다면 이상한 낌새를 차렸을 때 가능한 조치라도 취했을 것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배출되는 화학물질관리, 이제 우리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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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학공장 폭발사고. ⓒ SXC

작년 2013년 한 해 사고만 87건, 예년 평균 12건에 비해 7배 이상 급증한 화학물질 사고는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을까. ‘이웃의 살인자’로 우리에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사고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일과 건강의 두 번째 기획기사다.

2주에 한번 꼴로 발생되는 화학물질 사고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복기함으로써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그 공통점은 어떤 문제점를 가지고 있는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최근 화학물질 사고의 공통점은 ‘사고를 일으킨 물질의 정체를 모른다’이다. 

첫 번째 살인자 ‘불산’
2012년 9월 27일 오후 3시 43분, 구미 휴브글로벌 사업장에서 12톤의 불산이 누출되어 노동자 5명이 사망하고 대책활동에 투입된 소방관 등 18명이 부상 당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화물차 탱크로리 연결밸브에서 누출된 불산은 사업장내 노동자는 물론 순식간에 반경 1km까지 바람을 타고 번져 마을 주민에게 피해를 주고, 주변의 농작물을 포함한 식물을 고사시켰다. 주민 1만2천 명이 검진을 받았고 가축 4천여 마리가 피해를 입었으며 차량 2천여대가 부식되는 등 주민보상액만도 380억 원에 이르는 초유의 산업·환경재해로 기록되었다.

이처럼 피해를 키운 가장 큰 원인으로 초기대응의 문제가 꼽혔다. 마을주민은 물론 사고현장에 투입된 소방관, 경찰관, 노동부 구미지청, 구미시청 관계자 그 어느 누구도 휴브글로벌이 불산 취급사업장인지 알지 못했고 이 불산이라는 ‘화학물질 정보’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열려진 밸브를 찾아 잠그는 데 8시간이 걸렸으며(불산은 계속해서 공기 중으로 누출되고 있었다) 출동한 소방관은 중화제인 석회가 아닌 애꿎은 물만 뿌리고 있었고 주민대피명령은 4시간 뒤에나 내려질 수밖에 없었다.

4개월 뒤인 2013년 1월 27일 오후 1시 22분, 이번엔 삼성전자 화성공장 11라인에서 불산이 누출되어 노동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 당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고는 세계적 기업이라는 삼성이 불산의 독성학적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밸브 교체작업으로 1차 노출된 후 귀가한 노동자를 다시 불러 추가 작업을 시켜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불산의 경우 노출농도가 높지 않을 때는 일정한 시간적 경과가 필요하고, 그 기간 동안에는 화상에 의한 반점이 생기거나 목 통증과 같은 증상 외에는 별다른 특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응급조치와 함께 바로 병원으로 후송하여 최소 24시간 이상 관찰하고 이상을 없을 시 퇴원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삼성은 1차 노출 사실을 알았음에도 재차 작업에 투입시킴으로써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저질렀던 것이다. 

두 번째 살인자 ‘폴리에틸렌’
2013년 3월 14일 오후 8시 50분 여수국가산단 내 대림산업 HDPE공장 저장조(사일로, silo)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고밀도 폴리에틸렌 중간제품인 분말상태(FLUFF)를 저장하는 저장조(사일로)의 내부 검사를 위해 맨홀을 설치하고자 저장조 2층에서 보강판 용접 작업을 하던 중, 내부 잔존한 화학물질 분진과 잔존가스가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여러 사고 원인이 제기되었다. 그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역시 폭발성이 강한 폴리에틸렌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는 것이다. 화기작업(용접)에 들어가면서 만일 탱크 내 폭발위험물질의 존재를 알았다면, 그 폭발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있었다면, 육안으로 확인된 분진을 보면서 노동자들은 용접봉을 들진 않았을 것이다.

세 번째 살인자 ‘아르곤가스’
2013년 5월 10일 오전 2시 25분,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용광로 3기 지름 5m 깊이 8m의 전로 안에서 건설 공사를 마무리 작업하던 노동자 5명이 질식, 사망한다. 작업 중 아르곤 가스가 누출돼 산소 부족으로 사망에 이른 것이다. 작업 시작 전 전로로 통하는 가스배관에 아르곤 가스가 주입된 사실을 알지 못한 노동자들이 죽음의 용광로에 제 발로 들어간 것이다.

이번 역시 사고의 원인은 명확했다. 공기보다 무거운 아르곤 가스가 바닥으로 가라앉으며 산소농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작업자들은 알 수 없었다. 작업투입 전 산소농도 체크가 이루어지고 안전조치가 완비돼야 용광로에 투입할 수 있지만, 이런 정보는 전달되지 않았다. 결국 다섯 명의 생명이 꺼져갔다.

네 번째 살인자 ‘원유, 나프타’
2014년 1월 31일 오전 9시 35분, 여수산단 GS칼텍스 원유2부두에서 대형송유관이 파손되어 원유와 나프타, 유성혼합물 등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 사고로 인근 바다와 해안가가 오염피해는 물론 충돌 당시 바다에 추락하여 노동자 1명이 부상 당하고 340여 명의 주민들이 구토와 어지러움증을 호소하며 병원 진료를 받았다. 이후 1만 명 규모의 인원이 방제작업에 투입되었다.

사고 발생 5일 지난 후에야 유출된 화학물질에 대한 위험성이 제기되면서 방제작업에 투입된 주민과 봉사자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강조되고 사후관리 요구가 터져 나왔다.

보통의 원유는 1급 발암성 물질인 벤젠과 같은 방향족탄화수소가 포함되어 있고 헥산, 톨루엔, 자일렌 등 급성독성 물질이 고루 들어 있어서 단기간 급성노출로 두통이나 구토 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나프타의 경우는 위와 같은 유독 성물질의 함량이 더욱 높아 노출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주민을 포함한 관계기관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초기 유해물질에 대한 정보가 주민을 포함한 작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어 그에 따른 체계적인 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름유출 사고시 초기 8시간은 주민들의 대피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방제작업 투입시 방독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 살인자 ‘암모니아’
2014년 2월 13일 오후 1시 남양주시 도농동 빙그레 제2공장에서 암모니아 가스 6톤이 유출, 폭발하면서 노동자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암모니아 누출이 있은 후 2시간 동안 빙그레 측의 초기 대응은 미숙했고 사고현장 20미터 거리에 있었던 아파트 600세대, 반경 1킬로미터 주변 학교, 주택 등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2시간 후에야 폭발음을 들어야 했다.

암모니아 가스는 인체 내에서 산으로 변해 독성이 발생, 소량만 흡입해도 위험하며 노출시 눈과 점막 등 피부를 심하게 자극하고 흡입량이 많으면 사망할 수 있다. 폭발성이 있어 취급에 주의해야 하는 화학물질이다. 공기보다 가벼워 빠른 속도로 주변에 퍼지기 때문에 인근 민들의 건강상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있는 사고대비물질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 사고 역시나, 지역주민들이 암모니아라는 ‘이웃의 살인자’가 남양주시 도농동 344-3번지, 바로 우리동네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또한 이 살인자에게 어떤 위험성이 있기에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제공받고 있지 못했다.

살인자의 정체 알아야 예방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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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 발족식 화학물질을 ‘정보공개청구운동’과 ‘지역사회알권리법’으로 감시,감소,퇴치시킨다는 내용의 포퍼먼스을 진행중이다. ⓒ 일과건강

구미불산 이후에 발생한 대표적인 6개의 화학물질 사고를 살펴보았다.

사고마다 또 다른 원인도 있을 수 있겠으나 가장 핵심적인 공통점은 ‘사고를 일으킨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가 사전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미휴브글로벌과 화성삼성전자 불산누출사고가 그러했고 여수대림산업과 당진현대제철 가스폭발누출사고가 그러했고 여수GS칼텍스 원유와 남양주빙그레 암모니아 누출사고가 그러했다.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구성성분, 그 성분의 위험성이 사전에 주민을 포함한 관계자들에게 공지되고 사고 발생시 대응 매뉴얼이 마련되어 평상시 훈련된다면(민방위 훈련이 그렇게 강조되는 우리나라가 이런 문제는 훈련은 고사하고 왜 매뉴얼조차 없는지 정부와 관계당국은 되새겨보길 바란다) 우리주변 화학물질은 ‘이웃의 살인자’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지난 3월 20일 국회 앞에서는 24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알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아래 감시네트워크)’ 발족식이 진행되었다. 감시네트워크는 발족선언문에서 지역주민의 화학물질 알권리 보장을 위한 범국민적 ‘화학물질 정보공개 청구운동’과 화학물질 사고예방과 비상응급대응을 위한 ‘화학물질관리와 지역사회알권리법 제정’ 대국민 캠페인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일과건강을 포함한 녹색미래, 민주노총, 반올림, 발암물질국민행동, 서울아이쿱, 여성환경연대, 환경정의 등의 시민사회단체와 ‘지역사회알권리법’ 대표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은수미 민주당 의원이 함께했다.


글 : 일과건강 현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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