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알권리
2013.10.29 10:20

고독성물질 저감의 성공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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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성물질 저감의 성공 사례
- 발암물질국민행동, 금속노조, 제조기업 간의 유해물질가이드라인협약에 대하여

김신범 실장(노동환경건강연구)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수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서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발암물질 관련 사업을 추진하였다. 여러 전문가와 함께 발암물질목록작성위원회를 운영하여 2010년에 ‘발암물질목록1.0’을 공표하였고, 금속사업장을 중심으로 발암물질조사사업을 수행하여 발암물질 사용의 심각성을 사회에 알린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발암물질의 저감이라는 숙제가 대두되었고, 사업장 차원의 대책 수립과 함께 산업별·지역별·제품별 대책 수립에 나서게 되었다. 그 결과 타타대우상용차에서 모범적인 관리 사례를 만들 수 있었고, 서울·군산·울산 등지에서 발암물질 없는 지역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금속가공유, 도료 등을 중심으로 한 제품별 대책 수립도 추진하고 있다. 본고는 이 중에서 제품별 대책 수립의 사례를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화학물질이라는 제품의 생산자와 사용자 간의 관계 속에서 덜 유해한 제품의 생산과 사용을 유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공유하고자 한다.

화학물질의 생산과 소비에 개입해야 할 이유
어떤 사업장에서 사용 중인 화학물질을 만날 때, 이 물질에 함유된 성분들이 기능상 꼭 필요하니까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오늘의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발암물질목록작성위원회와 함께‘발암물질목록1.0’을 공표하면서 일터에서 사용되는 발암물질의 실태조사에 나섰다. 2010년에는 금속노조와 87개 사업장의 물질안전 보건자료(MSDS)를 수거하여 분석하였고, 2011년까지 이 중에서 약 50개 사업장을 방문하여 화학물질 사용 실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2011년 말 1만2,952 종의 제품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여 분석한 결과, 매우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발암물질 등 고독성물질이 너무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었다. 
20131029_1.jpg <표 1>에서 볼 수 있듯, 구성성분 중 가장 독성이 큰 성분의 독성값을 대표로 부여하여 1만 2,952개의 제품을 분석하였는데 사람에게 암을 일으킬 수 있는 1A, 1B 제품이 총 12.3%나 되었으며, 발암성, 변이원성, 생식독성, 내분비계교란성, 잔류성·농축성 등 고독성으로 분류되는 성분을 함유한 제품은 총 55.0%에 이르렀다. 믿어지지 않는 수치였기 때문에 분석을 수차례 반복하였으나 결과는 같았다. 
발견된 고독성물질 중 다수는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성분들이었다. 예를 들어, 가장 선도적으로 고독성물질 저감에 앞장서는 볼보그룹에서 발표한 금지물질 목록인‘블랙리스트(blacklist)’에 해당하는 물질이 함유된 제품이 999개였으며, 사용 제한 목록인‘그레이리스트(greylist)’에 해당하는 제품은 650개였다. 그뿐만 아니라 자동차산업에서는 폐차규제(ELV) 때문에 6가크롬, 카드뮴, 납, 수은 등 4대 중금속이 금지되었는데, 자동차산업에 사용할 목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6가크롬이 함유된 도료가 남용되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더 심각한 경우로는, 유럽에서 금지된 물질이 특정 기업에 의해 수입되고 있으며, 굳이 그 성분이 꼭 들어가지 않아도 될 제품들에‘끼워 팔기’되는 것도 확인하였다. 환경부에서‘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의 도입을 추진하면서‘국외의 고독성물질이 유입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고 한 언급이 단순한 우려가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보니, 화학물질 생산자들은 저가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고, 화학물질 사용자들은 저가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화학물질의 생산·유통·소비 과정에서 환경과 건강이라는 요인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았다. 이에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기업과 노동조합이 화학물질의 소비자로서 정당한 인식과 권리를 행사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하였다.

불매운동 vs 안전제품협약
본 실태조사에서는 국외의 금지물질을 수입하여 사용하는 기업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절삭유나 연삭유와 같은 금속가공유에‘짧은 사슬-염화파라핀’사용을 금지하고 있고, 더 나아가 덴마크에서는 프레스와 같이 큰 압력을 이겨내야 하는 경우에만‘중간 사슬-염화파라핀’이나‘왁스형-염화파라핀’을 사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또한 공장 바닥 청소 등에 사용되는 세척제류에는 환경호르몬이며 수생생태계에 큰 위협을 주는 노닐페놀 계열물질이 금지되고 있었다. 래커페인트에 많이 첨가되는 프탈레이트의 일종인 DEHP(di(2-ethylhexyl)phthalate)의 경우에는 2015년부터 사용 제한이 결정되기도 하였으며, 이러한 물질들은 대체물질이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굳이 이러한 물질들을 수입해서 제품 제조에 사용하는 기업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 기업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해당물질의 사용중단을 요청하며, 따르지 않을 경우 불매운동을 펼치는 것이 의논되었다. ‘짧은 사슬-염화파라핀’을 사용하던 한 기업에게도 동일한 과정을 밟아나갔다. 해당 기업에서는 즉각적으로 사용 중단과 전량 폐기를 약속하고 나섰다. 또한 금속노조에서는 이 기업들 이외에도 다른 기업들이 같은 행위를 하고 있을 것이라 의심하였고, 이는 MSDS에 대한 신뢰도가 워낙 낮기 때문에 비롯된 일이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노동조합은 금속가공유에‘짧은 사슬-염화파라핀’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확인을 모든 기업에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기업들로서는 제품마다 분석시험 성적서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다른 기업들이 이런 문제 기업들 때문에 곤란을 겪는 일이 발생된 것이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금속노조와 의논하여 방향을 수정하였다. 금속가공유 제조기업들과 금속노조 그리고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공동의 유해물질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우려하는 성분이 함유되지 않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제품을 구매하여 사용하도록 하자는 것이 취지였다. 네거티브 방식이 아니라 포지티브한 방식으로 전술을 전환한 것이다. 

금속가공유 유해물질가이드라인협약의 내용과 이행 상황
유해물질가이드라인 초안은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작성하였고, 금속노조와 금속가공유 제조기업들이 간담회를 통하여 협약내용을 조율하였다. 그 결과, 2012년 4월에 8개 업체가 참여하는 협약조인식이 있었고, 2013년 5월 현재 총 16개 사업장으로 참여가 확대되었다. 
가이드라인은 총 5개 그룹의 물질을 대상으로 작성되었다. 그것은 염화파라핀, 보린산, 알킬페놀, 에탄올아민, 윤활기유이다. 금속가공유에 첨가되는 방부제에 대해서는 2013년 가이드라인 개정 시에 다루기로 하였다. 
이 가이드라인에서는 상호 노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사회적으로 이끌어내고 전 사회적으로 유해화학물질 저감 분위기 형성에 기여하자는 약속이 있었으며, 이 약속을 실행하기 위하여 연 1회 금속가공유의 유해물질사용저감보고서를 발간하기로 하였다. 2013년 3월,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금속노조 및 협약 참여 기업들과 함께 중간 점검을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다수의 기업이 협약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유해물질 저감이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장벽은 남아 있다. 유해물질이 덜 함유된 제품을 개발하여 보급하는 데 테스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고, 금속가공유 유해물질가이드라인을 잘 모르는 기업에서는 왜 제품을 바꿔야 하느냐며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이러한 방향이 옳기 때문에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은 협약 당사자 사이에 조금씩 더 커지고 있다. 
20131029_2.jpg

가이드라인 합의와 이행의 의미 그리고 과제
금속가공유 유해물질가이드라인이 이행되는 과정에서염화파라핀이나 노닐페놀의 사용을 저감시키는 효과가 확인된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이제 한국사회에서도 ‘고독성물질을 써야만 생산이 가능한가?’하는 매우 상식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고, 고독성물질의 생산과 수입을 파악하고 유통 과정을 추적하는 노력이 매우 소중한 것임을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이 깨닫게 되었다. 중장기적 전략을 수립하여 화학물질로 인한 사회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운동이 기획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유해물질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가장 좋은 길이지만 매우 더디다. 이 때문에 고독성물질을 저감시키는 노력이 민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의 비정부기구인 국제화학물질사무국(ChemSec)에서는 자체적으로 SIN 리스트(Substitute It Now List)를 작성하여 공표함으로써 유럽연합(EU)이 사용 제한 후보물질을 확대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고, 기업과 관련해서는 SIN 리스트에 등재된 물질을 제조 수입하는 기업들을 공개하거나 자발적으로 유해물질 저감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과는 파트너십을 맺어 사회적으로 칭찬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국제화학물질사무국이 전략적으로 기업을 두 가지로 구분하기에 가능했다. 석유화학산업이나 농약산업과 같은 화학물질 생산기업과 화학물질을 사용하여 자동차나 전자제품 등을 생산하는 기업을 구분한 것이다. 화학물질 사용자 기업에 대해서는 소비자로서의 자각을 요구하며 유해물질의 사회적 부담을 감소시키기 위한 협력적 관계 형성을 유도한다. 이러한 전술은 상당히 유효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형성되어야 한다. 국내에 유통되는 화학물질에 대해 노동조합과 시민사회가 자체 통계를 구축하고 감시할 수 있어야 하며, 고독성물질의 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화학물질 사용자 기업이 소비자로서의 감수성을 획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금속노조와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행동’이 이러한 취지에 동의하고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금속가공유 제조기업의 참여가 있었고, 최근에는 도료 제조회사들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밖에 또 다른 긍정적인 신호들도 감지되고 있다. 군산의 타타대우상용차에서 노·사 공동으로 고독성물질저감 정책을 마련하여, ‘Toxic Free TATADAEWOO 만들기’선언을 한 것이다. 타타대우상용차 노·사는 직원들의 직업성암 예방뿐만 아니라 화학물질로 인한 해당지방자치단체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기업의 책임임을 분명히 하였다. 현재 타타대우상용차의 고독성물질관리 사례는 여러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으며, 금속노조와 사용자 간의 중앙 교섭에서 발암물질조사를 2년에 1회 실시하기로 합의한 것도 고독성물질관리에 대한 기업의 관심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암성·생식독성·변이원성물질의 경우 노출기준고시에 표기하고 특별관리물질 지정을 확대하며 사업주의 관리 책임을 강화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고독성물질에 대한 기업의 태도를 달리하도록 이끌고 있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 줄 더 좋은 사회를 꿈꾸며
한편으로는 아직 자동차산업이나 전자산업의 대기업들이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거나 공식적으로 동참하고 있지 않아 아쉬움도 크다. 대기업은 화학물질 시장에 개입하여 고독성물질의 유통이 줄어들도록 할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흐름은 시민사회와 노동조합의 보다 본격적인 운동이 추진된 다음에나 가능할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고독성물질을 줄여나가기 위한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은 이제 겨우 기지개를 펴고 있는 수준이므로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꿈꾸는 자에게 보다 나은 미래가 찾아올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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